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불교 (2)
불교 공동체인 승가에서 율장이 만들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욕망의 덩어리이므로 그것이 잠깐 승가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이 원치 않았던 또 다른 세상을 만든다. 수행자들 사이에 피치 못할 충돌이 생기게 되고 또 서로 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기 때문에 규칙이 필요하다.

엄밀하게 계와 율은 다르다. 계(戒)는 승가라는 종교 집단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해도 좋은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키는 사회의 윤리·도덕과도 같은 것이다. 율(律)은 승가라는 공동체 속에서 적용되는 법으로, 그 개념 자체에 ‘제거·규칙·행위의 규범’이라는 의미가 있다. 곧 심신을 다스려 번뇌를 제거하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나쁜 습관을 버리고 올바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승가 운영을 위한 규칙이다.

수행자들은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일 뿐, 혼자 살아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승가라는 단체생활에서는 한 사람의 잘못이 그 공동체 전체의 이미지를 좌우할 수도 있다. 한두 사람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듣고 존경받지 못한다면, 그 누가 그들을 위해 의식주 삼건을 위한 보시를 기꺼이 하겠는가? 

그 후 불교는 각 지역을 지나가면서 여러 공동체들을 설립하고 경험했다. 중국에서도 많은 공동체 운동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보조국사 지눌의 신행결사인 정혜결사나, 의천의 뒤를 이어 천태종 혁신운동이었던 원묘국사 요세의 백련사결사 등이 있었다. 이 백련결사는 지눌의 정혜결사와 쌍벽을 이루면서 고려불교의 중요한 신앙결사로서 불교 발전에 공헌했다. 

지난 세기 조계종의 문경 봉암사결사도 공동체 운동이었다. 봉암사결사는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일제 강점기의 왜색 불교로 인해 계율이 땅에 떨어졌고 선(禪)이 몰락할 지경에 이른 것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됐다. 성철을 비롯해 청담·자운·법전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했다가, 6.25전쟁이 일어나기 몇 달 전 ‘흩어져야 한다’는 다수 의견에 따라 미완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결사가 시작된 지 3년 만이었다.

 

계(戒) 
사회의 윤리·도덕과도 같은 것
율(律) 
‘제거·규칙·행위의 규범’의 의미

피타고라스
에게해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피타고라스는 이집트·그리스·이탈리아·에게해 등을 다니며 장사했던 아버지를 따라, 견문을 넓히고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스승이었던 탈레스의 주선으로 23년간 이집트에서 유학했다.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이집트가 함락되고,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이송되어 12년을 보냈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익숙해진 그는 56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인 크로톤 섬에서 학술단체이면서 수도원 성격을 띤 최초의 철학공동체를 결성하였다. 피타고라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밀결사와도 같은 지적공동체였다. 

이 공동체는 남성만으로 결성되었으며 여성에게는 접근을 엄격하게 금했다. 후대의 기독교 수도원은 이 피타고라스 교단의 조직과 실천을 모델로 하였다. 그는 생전에도 적들로부터 많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는데, 그의 사후에 폭도들이 그의 학교에 난입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학살하고, 공동체를 불 질러 완전히 초토화해 버렸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그의 지혜의 파편들인 피타고라스의 금구(金句)는 스승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고 싶어, 유일하게 도망친 제자 리시스의 기억에 의한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져버린 종교인 희랍 고대 오르페우스 신앙인 환생과 윤회를 믿었고, 오르페우스의 교리대로 육식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규칙 중에서도 누에콩을 먹어서는 안 되고, 집 안에 제비집을 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사상을 기록하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저서가 없고, 오늘날에는 제자인 필로라오스와 기타 학자들의 저술에서 단편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음악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선(禪)에 버금가는 줄 간파하였다. 음악이란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인 음정이 형성되어야 하고, 음정이 조화되어야 좋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 어울림 음정을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피타고라스의 음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 듯 ‘음악은 선(禪)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가 이름 지은 ‘하모니아(harmonia)’란 노자의 도요, 붓다의 법이다. 곧 흘러가는 강물에서 물에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면서, 강물과 나를 구별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라즈니쉬가 그에 대한 법설을 하면서 한 말이다. “피타고라스는 그런 불가능한 일(동·서양을 조화시키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었고, 그는 결국 성공하고야 말았다. 자신 안에서 동과 서가 하나가 되었다. 그 자신 스스로 음과 양을 결합하고, 남성과 여성의 기운을 조화시켰다. 그는 ‘상극이 기운을 완전하게 통일시킨 인물 아르다나리쉬바르(Ardhanarishvara)였다. 시바와 샥티를 결합했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2년 8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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