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의 일심.
백성과 하나 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

김도영 교무
김도영 교무

[원불교신문=김도영 교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가 진짜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유가 있다. <태촌집(泰村集)·조선 중기 문신 고상안(高尙顔:1553∼1623)의 시문집>이란 책 때문이다. 1594년 한산도에서 충무공을 직접 만났던 고상안은 충무공에 대한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공의 언론과 지모는 실로 난리를 평정할 재주였으나 생김이 풍만하지도 후덕하지도 않고 관상도 입술이 뒤집혀 개인적으로 복 있는 장수가 아닌 듯 했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현충사에 보관된 표준영정과는 완전 거리가 먼 이야기라 놀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100원짜리 동전의 도안을 바꾼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요즘 필자가 읽고 있는 책이 <이순신(김종대 著)>이다. 몇 번이고 읽을수록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는 필자를 놀라게 한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는 이순신을 성장(聖將)이라 했을까싶다.

백의종군했던 충무공이 다시 통제사가 됐다. 남은 전함은 고작 12척. 여기서 충무공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우리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대부분 12척의 배를 인수하러 허겁지겁 달려갔을 것이다. 허나 충무공은 달랐다. 그는 배를 접수하러 바다로 가지 않고 대신 육지로 갔다. 열흘 넘게 전라도 땅을 순회했다. <불멸의 이순신>을 쓴 소설가 김탁환은 “충무공은 그때 숨어 있던 군사와 군량미를 모으고 민심을 돌렸다”고 말했다. 

필자는 병법을 모른다. 그러나 가늠은 있다. 그래서 놀랐다. 충무공이 무엇으로 싸움을 했는지 한 방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건 단순히 전함이 아니었다. 그 배를 타는 사람, 그들이 먹고 살 양식, 부하의 가족에 대한 안위까지 충무공은 염두에 두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충무공이 겨냥한 표적은 그들의 ‘마음’이었다.

충무공은 문서에 수결(手決·요즘의 사인)할 때 자신의 이름 대신 ‘一心(일심)’이라고 썼다. 그걸 간절히 원했다는 뜻이다. 무엇과 하나가 되는 마음일까. 부하와 하나 되고, 백성과 하나 되는 마음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니까. 

‘충무공의 일심’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장군이 함경도에서 근무할 때였다. 전라도에서 온 병사가 부모상을 당했다. 천리 길이라 고향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충무공은 자신이 타는 말을 기꺼이 내주었다. 병사는 그 말을 타고 가 부모상을 치렀다. 충무공은 말을 내줌으로써 그의 마음을 얻었다. 비단 전라도로 달려간 병사의 마음만 얻었을까. 이 소문을 전해 들은 군영의 모든 병사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필자는 그게 충무공이 펼쳤던 ‘병법 중의 병법’이라고 본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과 마주했을 때 충무공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필히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고 외쳤다. 여기에 ‘일심’을 만드는 비법이 담겨 있다.

일심은 한마음이다. 상대방과 하나의 마음이 되긴 어렵다. 내 마음 따로, 상대 마음 따로니까. 그럼 어떡해야 할까. 내 마음을 죽이면 된다. 그럼 상대와 하나가 된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러면 133척의 왜선 앞에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병사들의 마음을 어떻게 ‘일심’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각자 자신의 마음을 죽이면 된다. 필사즉생(必死卽生). 그럼 거대한 하나의 마음만 남는다. 그게 ‘일심’이며 12척의 배에 실었던 가장 파괴력 있는 무기이다.

교서폐기 사건으로 교심(敎心)은 천심(千心)만심(萬心)으로 쪼개졌다. 교단은 지난 3월 혁신을 주 업무로 진행하는 ‘교단혁신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어떡해야 일심이 될까. 충무공에게 원불교 개혁을 위한 병법을 묻고, 또 묻는다.

/삼동인터내셔널

[2022년 9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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