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평가는 물품에 대한 가격을 매기는 것으로부터 선악미추(善惡美醜)에 대한 가치판단, 학생의 학습이나 발달 등을 알아볼 때 두루 사용되는 용어다. 물론 평가에는 계량화라는 측정이 수반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할 것인지’가 파악된 다음에 ‘구성원 사이에 환류(Feedback)가 동행 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만일 그런 피드백이 주어졌다면 그것을 일러 ‘평가’라 할 수있다. 

교단에도 평가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크게 보면 교정평가를 비롯하여 교화·교육·자선 분야의 평가 등 다양하다. 미세하게는 특정인에 대한 상벌·인사이동 등의 평가자료로부터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등도 예외는 아니다. 나아가 법위사정은 교도의 법위를 조사·심사하여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법위사정이 ‘평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려면 적어도 그 자체에 대해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타당하다고 여기며 객관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환류 체계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법위사정이라 할지라도 대중의 신뢰, 존중을 얻기가 어렵다. 

혹자는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다. “교단 내 중요 사안은 모두 공의에 의해 처리되기 때문에 법위사정도 우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회의나 공의는 절차적 정당성만 확보해줄 뿐, ‘결과와 과정’에 대한 정당성 모두를 결코 보장해주지 않는다. 회의나 공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내린 의사결정에 모종의 책임 여부를 묻는 경우, 대중이 회의 참석자들에게 그저 공의라는 명분으로 면책특권을 부여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의’가 ‘공의’다우려면 권한과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

요즘 대학에서는 교수의 강의는 물론 연구와 사회봉사에 이르기까지 학생 또는 정부, 관련자의 평가 수반이 이미 오래됐다. 그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도 한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종교도 평가를 받는다. 때로 불특정 다수·교도·특정 평가자·진리로부터 평가가 알게 모르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가 구성원에게 공감을 얻기보다는 애매모호한 상태로 공의를 내세우고 공의 뒤에 책임을 숨기면 더 이상 평가는 설 땅이 없게 된다.

공직사회의 평가도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가혹한 편이다. 그에 비하면 교단 내의 평가는 어떤가? 구성원의 인사·학생들의 학업성취도·교화·교육·자선 등의 평가에서 과연 객관적이고 신뢰가 있으며, 타당한 평가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한 번에 모든 것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면 우선순위를 정해서 차근차근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공정하고 정의가 바로 선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구성원들, 더 나아가 지도자가 제대로 된 평가문화를 공유할 때 더욱 용이하다. 이로부터 구성원의 신뢰가 출발한다. 

교단 내의 모든 평가문화가 제대로 자리매김하려면 물론 제도도 중요하다. 그러나 평가문화의 자리매김에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제대로 된 평가문화를 공유하고 교법에 근거 삼는 노력이 선행되는 것이다. 

이른바 평가문화의 인프라 구축이 요구된다. 그래야 구성원 인사, 법위사정에 대한 신뢰는 물론 교단발전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

/원광대학교

[2022년 9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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