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인간관계에서 신뢰는 생명과 같이 소중하다. 더욱이 조직이나 집단의 주된 활동을 앞서서 주도하는 지도자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 지도자는 많지만,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지도자로서 자격요건 가운데 신뢰는 오랜 시간 동안 검증의 산물이기에 그렇다. 그저 자리에 있다고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사회 어느 분야든 예외 없이 역사가 말해준다. 업적사회일수록 능력을 중시하는 반면, 체면과 위신, 예의·염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인간 됨됨이를 보다 더 중시할 수 있다. 말하자면 지도자의 신뢰 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이 능력인가 아니면 다른 조건, 즉 자연인의 사적 생활을 포함한 인격적인 측면을 중시하느냐의 차이다. 

<원불교 교전>에서는 지도자에게 그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정전> 제3 수행편, 제15장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 그리고 지도할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할 줄 알아야 하며(<대종경> 교의품 38, 인도품 23, 변의품 33), 지도자의 마음 여하에 따라 그 사회의 흥망성쇠가 좌우되므로 대중의 신망을 잃지 말 것(<정산종사법어> 공도편 56) 등을 부촉하고 있다.

최초법어에서는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과 지행 대조 그리고 지도받는 사람에게 신용을 잃지 말 것과 사리를 취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도 신용을 중시하고 있다. 물론 신용은 경제 관련 용어다. 신용은 보이지 않는 믿음, 자산을 의미한다. 반면에 신뢰는 계산하지 않지만 인간관계에서, 즉 피지도자와 지도자 사이에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심리적 믿음을 시사한다.

스승의 조건에 대해 곧잘 신뢰를 꼽는다. 사제 관계에서 신뢰는 생명과 다름이 없다. 이것이 깨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이 어린 학생들로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기억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스승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그만큼 지도자는 신뢰를 먹고 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피지도자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자리만 차지하는 지도자로 전락하게 된다. 종교는 이와 관련해 더욱 엄격하다. 지도자가 지도받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종교적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사 선출된 지도자라 할지라도 선출된 이후 이와 상반된 결과를 노출하게 되면 그의 생명력은 상실된다. 그래서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지도자가 있는 반면, 살아도 죽은 지도자가 있다. 

왜 지도자에게 신뢰가 생명인가? 그가 한 말이 실천을 통해 확인되지 않으면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인간관계의 신용이 추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하물며 공동체의 지도자는 그가 한 말이 실천을 담보해주지 못해 기울기가 생기면 그의 존재감은 이미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굳이 양치기 소년을 언급하지 않아도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면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다. 지도자가 대중의 신뢰를 얻는 길은 소박하게나마 그가 대중에게 한 약속의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 이는 크게 보면 진리의 인증을 받는 길이기도 하다.

/원광대학교

[2022년 9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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