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상현 교무
라상현 교무

[원불교신문=라상현 교무] 경기인천교구청과 교당 신축 불사에 정성을 모아준 영가들의 천도를 축원하는 ‘소멸과 생성의 하얀 축제’를 진행했다. 문득 ‘삶과 죽음의 과정이 어떻게 축제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사를 구분해서 생각하지 말고, 큰 변화의 이치 속에 무한히 변화하는 한 덩어리로 바라보면 그것은 생사일여(生死一如), 즉 하나다. 한번 소멸해 없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멸과 생성의 연속이다. 

사람은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진급으로 또는 강급으로 변화를 한다. 이 순간 한마음 챙기는 정성에 따라 얼마든지 진급할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 소멸과 생성의 변화는 우리에게 큰 축복이 아닐까 싶다.

이 축복의 순간에 어떠한 업을 짓고 있는가? 내 몸과 입과 마음을 사용해 지은 결과가 곧 ‘업’이다. 몸과 입과 마음을 잘 쓰면 선업으로 낙을 초래하고, 잘못 쓰면 악업으로 고를 초래한다. 선이든 악이든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욕심을 이루기 위해 업을 짓지만, 아는 사람은 공익을 위해 업을 짓는다. 이생에 업력에 끌려다니면 내생에 그 과보를 받는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이번 생에 업장을 소멸하고 기질 변화를 이루는 게 인생의 큰 핵심 문제다.

인생의 평안과 고통은 모두 인연이 그 중심에 있다. 그래서 모든 인연을 상생으로 돌려놔야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 또 나 때문에 누군가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도를 아는 사람은 내 도리를 다할 뿐 상대의 도리에 관여하지 않는 다. 

소멸과 생성의 사이, 한 생을 살 때 나를 보존하는 길은 무엇일까. 잘 챙기는 것이다. 
일을 당할 때마다 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인연을 상하게 하지 않았는지, 집착에 빠져 있지 않은지, 탐심·진심·치심에 빠져들지 않았는지 챙기고 또 챙겨야 업에 끌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수원교당

[2022년 10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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