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명 교도 / 김천교당
박순명 교도 / 김천교당

[원불교신문=박순명 교도] 한 달에 한 번 30계문 연재를 무사히 마치게 됨에 깊이 감사드린다. 

처음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 세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법문에서 생기를 찾아보자. 내가 먼저 법문을 딱딱한 것이 아닌 가까운 어른이 주시는 따뜻한 말씀으로 느껴보자. 둘째, 고상하게 쓰지 말자. 내가 독자보다 더 아는 것이 없다. 40대 보통 아줌마인 내 수준에서 써 보자. 땀냄새 나고 때로는 찌질한 일상 속에서 애쓰는 기록 자체가 의미있다. 셋째, 계문 해석이나 사회비판보다는 내 안의 치부를 찾아 드러내는 데 집중하자. 

마치면서 아쉬움은 있지만, 위와 같은 스탠스가 결국 나에게 맞는 옷이었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 솔직할 것. 약함을 외면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보다는, 직시하고 드러내는 것이 나로서는 강해지는 길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갓난아이 때부터 교당에 다녔고, 청소년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강한 의문을 가졌으며,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좌충우돌 그 답을 찾았다. 당시 나는 소태산 대종사 당대 제자들처럼, 원불교가 지금은 미약하나 주세종교로 드러나리라는 강한 확신을 가졌었다.

그러나 결혼 후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교단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 때 내게 닥친 것은 직장과 육아라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이었는데, 교당은 나에게 해결과 위안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하면서 다시 보게 된 교단의 모습은 정말 주세불 주세종교가 맞는지 강한 의문을 갖게 했다. 

원불교에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젊은 원불교는 왜 젊지 않은가? 원불교는 왜 대학생, 청년, 젊은 부부들, 젊은 출가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하는가? 교단은 그들의 질문과 어려움을 잘 들어주고 적절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가? 한때 이 생각을 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너무 답답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어른들은 “네가 공부를 얼마나 했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나무란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안 할 뿐이다. 굳이 신심없는 사람으로 보이면서 혼나고 싶지 않아서.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떠올려본다. 내 생각에 나는 스승님이나 교단을 판단할 지혜가 없다. 촛불이 어떻게 태양의 밝기를 판단하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즘은 너무나 좋은 것들이, 쉽고 다정하고 매력적인 형태로 나오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옳고 가치 있는데 너희들이 눈이 어두워 못 알아보는 것’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누구라도 쉽게 그 가치를 알아보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나는 이 요청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 도대체 교단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이른다. 결국 누구에게 요청할 일도 아니고, 지금으로서는 내가 내 삶 속에서 구현해야 할 일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40대 원불교 아줌마다. 화장실에서 변기를 닦거나, 일과 육아를 하면서 힘들어 진이 빠질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가 스승님 가르침이나 교단이 현재에 구현되는 모습이구나 싶다. 이러한 깨달음의 실천이 큐티(Quiet Time)를 접목한 〈대종경〉 묵상이었고, 그 일부를 지면을 통해 소개할 수 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동안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귀한 기회를 주신 〈원불교신문〉에 깊이 감사드린다.

/ 김천교당

[2022년 10월 24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