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명 교도 / 김천교당
박순명 교도 / 김천교당

[원불교신문=박순명 교도] 법마상전급 십계문 마지막 치(痴)는 국어사전에서 ‘불교 삼독(三毒)의 하나로 너무 미련하고 우둔해서 미친 듯한 짓을 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치심은 어떤 상이나 습관에 끌려 있는 체, 잘한 체, 아는 체하거나 반대로 부끄러워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즉 뻔뻔한 마음도 치심이고, 스스로 한계를 지으며 마땅히 나설 자리에서 나서지 못하는 것도 치심이니, 한마디로 어느 자리에 처하든지 있는 그대로 유연하게 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뻔뻔하게 잘난 척하는 치심은 경계하지만, 겸손한 척하며  게으른 경우는 그게 치심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마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도 “나는 원래 그런 거 못해요” 하는 것은 치심이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 익숙지 않은 일을 당하면 두려움에 핑계를 대고 피하기 쉽다. 그러나 원불교인들에게는 ‘그 일이 정당한 일인가 아닌가’를 생각한 후, 내가 꼭 필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면 두려움을 무릅쓰고 공부삼아 도전해보는 용기가 있다.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노력하면 되겠지요. 필요한 일이라면 부족해도 한번 해 보겠습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묘하게 지혜가 나와 자기 역량이 커간다. 

겸손하지만 도전하려는 이런 태도는 나의 회사생활에서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매일 부족함을 느끼고, 때로 어떤 일들은 나와 맞지 않음도 느끼지만 ‘공부삼아’해보는 것이다. 또한 내게는 비록 부족할지라도 노력하면 좋아지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것은 수행자의 바른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이것밖에 안된다고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조금 공부가 올랐다고 자만하지도 않고, 작은 데에서부터 여래를 표준하며 뚜벅뚜벅 걷는 것. 지금은 부처님의 작은 씨앗이지만 커서 큰 여래가 되리라고 자신을 믿는다. 

나는 현재 나이 마흔둘에 키는 166㎝, 이런 저런 특성을 가진 여성이다. 그러나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라. 그것은 현재 나타난 겉모습일 뿐이다. 내 안에 보고 듣고 인식하고 있는 주체인 이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요, 나이는 헤아릴 수 없고, 내 몸 안에 거하는 것 같으나 실은 형체도 크기도 알 수 없다. 그 큰 나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나는 이런 저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가둬두는 것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중생의 큰 착각이며 치심인 것 같다. 

내 모습을 내가 원하는 대로 심신작용을 통해 창조해갈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그 과정도 다 의미있고 즐거운 과정이다. 피아니스트가 콩쿨에서 우승하는 순간도 멋지지만, 건반을 더듬더듬 두드려가며 영감을 입혀 연주를 만들어가는 오랜 과정 또한 멋지고 소중하지 않은가. 

치심을 내지 말라는 계문이 삼십계문 맨 끝의 완결판으로 제시된 이유를 알 것 같다. 수행자로서 치심을 내지 말며 만능의 여래가 될 때까지 정진 적공하리라. 

/김천교당

[2022년 9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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