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금강경> 11장과 12장은 법보시와 경전의 중요성과 가치를 말한다. 세상을 가득 채울 정도의 무한한 양의 보물을 사용하는 보시보다 <금강경>을 전해주는 공덕이 더 크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11장의 내용은 8장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다른 점을 굳이 꼽자면, 8장에서는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를 한다는 것이고, 11장에서는 항하(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숫자의 항하가 있고 그 모든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삼천대천세계가 있으며 이 모든 세계를 가득 채울 정도의 칠보로 보시를 한다는 것이다. 

항하 모래의 비유는 세존이 커다란 숫자를 말할 때 쓰는 비유다. 갠지스강은 인도 북부를 동서로 가로질러 벵골만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가 2,460㎞에 달하고, 가장 넓은 곳의 강폭은 20㎞를 넘는다. 또 항하의 모래는 밀가루처럼 고와서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러니 ‘항하의 모래 수’라는 것은 무한한 수를 말한다. 비유가 어마어마하지만 결국 물질 보시보다 법 보시의 공덕이 더 큼을 변주하여 반복한 것이다.

변주와 반복은 <금강경>의 특징이다. 더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부정논리로 인해 <금강경>을 처음 읽는 사람은 혼란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이 변주와 반복이 <금강경>의 매력이다. 이 매력을 느끼고 경전 읽는 재미를 알게 되는 것은 읽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다만 <금강경>을 설명하는 글에서도 반복이 되면 재미가 없으니, 차이와 의미를 찾으려 한다.

세존은 사구게를 전하는 법보시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말한다. “수보리야 내가 지금 너에게 진실로 말한다(須菩提 我今實言 告汝).” 뒤에서는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을 하는 자이고 실다운 말을 하는 자이며 변함없는 말을 하는 자이고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자이고 다르지 않은 말을 하는 자이다(須菩提 如來 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誑語者 不異語者)(<금강경> 14장)”라고까지 말한다. 왜 이렇게까지 말할까? 중생의 시야에서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이것이 진실이니 제발 믿어달라는 호소 아닐까?

사구게는 무상(無相)의 진리를 담고 있다. <금강경>은 무상에 바탕해서(無住) 청정한 마음을 낼 것(妙有)을 말한다. 이 진리를 후대에 불성, 성품, 본성, 본래면목, 참마음, 주인공 등으로 변주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 진리 자리를 일원상이라고 말하고, 이 진리가 나타나는 모습을 공적영지, 진공묘유라 표현했다. 

“이 일원상의 진리, 불성, 무상의 진리를 믿어라. 제발 믿어라. 이것이 너희 중생들이 숭상하는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어떤 고귀한 존재도 사실은 너희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본래 그 마음이다.” 혹시 <금강경>의 변주는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닐지.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10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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