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법 교무
김지법 교무

[원불신문=김지법 교무] 장자는 전체(全體)의 관점에서 존재의 본질을 생각한다. 우주 전체에서 보면, 어떠한 변화가 우주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주는 항상 그대로 있다. 범위를 줄여서 지구 전체로 보면, 그 안의 모든 동식물이 천만변화를 한다고 해도, 지구의 물질적 총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개체로서 생멸은 피할 수 없다고 해도, 결국 다른 존재로 바뀔 뿐, 그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배를 골짜기에 보관해두고 물고기 잡는 그물을 늪에 보관해두고는 거기가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밤중에 힘센 사람이 그것을 짊어지고 달아난다 해도, 둔한 자들은 모를 것이다. 작은 것을 큰 것 속에 보관하는 것은 작은 것을 적절한 곳에 둔 것이다. 그런데도 달아날 여지가 있다. 세상 속에 저장되어 있는 세상은 달아날 곳이 없다. 그것은 변치 않는 사물의 궁극적 본질이다.”

장자는 세상의 가장 큰 것을 ‘하늘’이라 하기도 하고, 그 하늘을 품는 텅 비어 있음을 ‘도’라 하기도 한다. 무한(無限)은 곧 경계가 없다는 의미이다. 경계가 없는 이유는 무엇이든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가 있다면, 그 경계 밖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큰 것일 수 없다. 그래서 가장 크다면, 그것은 경계가 없다. 하늘은 경계가 없다. 그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다. 그러니 하늘을 피해 어디로 달아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나눌 수 없으니, 그 속의 어떤 것을 나눈다고 한들, 본래 하나임이 달라지겠는가.

“우리는 우연히 인간의 형체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뻐한다. 인간의 형체 같은 그런 형체가 만 번의 변화를 거치면서도 그 끝을 모른다면, 우리가 누릴 기쁨은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노니려고 하는 곳은 사물들이 달아날 데가 없어 모두 다 존재하고 있는 그런 곳이다. 성인은 젊어서 죽는 것도 좋다고 하고 늙어가는 것도 좋다고 하며, 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하고 끝나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충분히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하물며 만물이 다 매여 있는 곳, 우리가 단 한 차례 변화할 때에도 의지해 있는 것, 그것이라면 어떻겠는가!”

장자가 보기에 인간은 끝없는 변화의 과정에서 그러한 형체를 얻은, 물방울처럼 정말 찰나의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다. 성인이 노니는 곳이 바로 무한한 곳이니, 이 몸도 나요, 저 몸도 나다. 돌고 도는 바로 지금, 인간의 형체가 아니라 인간의 참된 성품, 그 덕이 드러난다. 세상 모든 것이 도 아님이 없고, 덕 아님이 없고, 신(神) 아님이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신이고, 나 역시 신이다. 신은 무한한 도의 작용으로 발현되기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이 없다.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신은 이미 이 순간 이 자리에 영원하다. 세상의 가장 큰 것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3대결산총회준비위

[2022년 11월 7일자]

키워드

#장자 #원불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