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떠한 경험도 의미없는 경험은 없었음을…

고준영 교무
고준영 교무

“…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신나게 타던 어린 시절,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아버지께서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뗐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웠지만, 뒤에서 잡아주겠다는 아버지를 굳게 믿고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세상 많은 아버지가 그러듯 저의 아버지께서도 자전거를 뒤에서 조금 잡아주다가 놓아버렸고, 저는 얼마 못 가 넘어져 엉엉 울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찌나 아버지가 야속하던지요. 아버지는 곧바로 보조 바퀴를 다시 달아줬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다시 보조 바퀴없이 연습을 했고 머지않아 자신감에 가득 찬, 훌륭한 자전거 라이더가 되었습니다.

학부 시절, 어느 교무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줬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진급에 있다.” 출가 한지 이제 겨우 9년째이지만, 그 짧은 시간을 찬찬히 되돌아보면 ‘사은께서는 나를 참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감상이 듭니다. 새로운 환경이 조금은 버거워 때로는 엉엉 울던 시간을 지나 차차 적응하고, 어느덧 능숙해지면 금세 새로운 과업이 주어지고, 또 한참 엎치락 뒤치락 하다 적응하면 또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고… 그렇게 반복되며 지나온 시간들이었습니다. 너무도 막막해 그냥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찌 되었든 해야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하다 보면,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버티다 보면, 어느새 적응을 넘어 자신감이 생긴 제 자신을 봅니다. ‘아, 사은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기에, 끊임없이 진급의 길로 몰아넣으시는 걸까.’

물론, 제가 상상할 수 없이 훨씬 어려운 경계 속에서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경계는 딱 제게 맞는 경계였고, 그 속에서 자신감도 생기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잘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서 시작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 보면 무슨 일이든 반드시 되게 되어있다는 것도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어떻게든 우리를 진급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도고일장 마고일장(道高一丈 魔高一丈). 단계가 올라가면, 또 어찌 그렇게도 나에게 꼭 맞는 경계들이 찾아와 또다시 나를 키우려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성장함에 따라 한 차원 높은 시각과 마인드로 바라보게 되니, 나를 괴롭히던 경계가 더이상 경계가 아니게 되고, 경계라 느끼지도 못했던 일이 경계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스승님들, 어른들께서는 얼마나 큰 고민과 얼마나 큰 고통을 견디시며 얼마나 큰 기도를 하실까,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모시는 교무님께서는 학생 시절, 이러한 고민을 하셨다고 합니다. ‘왜 진급에는 고통이 따르는 걸까? 모든 진급이 다 고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고통은 진급을 수반한다.’

“인생의 짐은 무거울수록 좋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버틸 수만 있다면, 인생의 짐은 무거울수록 좋습니다. 약간은 버거운 듯한 무게가 나를 성장시킵니다. 그 ‘버거운 듯한 무게’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만일 너무나 무겁다면 그것은 나를 완전히 무너지게 할 수 있기에 그럴 때는 도와줄 다른 사람(스승님, 도반 등)을 찾아 매달리는 것도 이겨낼 좋은 방법이 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완전히 무너지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새로운 진급을 가져옵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 연설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 대학생에게서 태어났고, 형편이 넉넉지 못한 양부모에게 입양됐습니다. 그는 대학을 다니다가 학비가 아까워 결국 자퇴를 택했고, 조금은 어려운 생활을 견디며 몰래 강의실에 들어와 수업을 들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서체들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 있었는데, 인생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음에도 흠뻑 빠져 매우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이 경험이 있어 후에 맥킨토시(애플의 컴퓨터)를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순간이 다 진급의 기회입니다.
이 세상은 어찌 다행 무량 세계로 펼쳐져있어, 사은께서는 여지없이 우리에게 딱 맞는 경계를 주십니다.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 그게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이 도대체 나를 어떻게 진급으로 이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과거를 찬찬히 되돌아보면 확연히 알 것입니다. 모든 순간은 나를 진급으로 이끌었음을. 그 어떠한 경험도 의미없는 경험은 없었음을.

더이상 자전거 타다 넘어지는 것으로 우는 아이는 아니지만, 크고 작은 경계 속에서 여전히 힘겨워할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이라도, 그저 버티고 묵묵히 할 일을 하면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그 환경은 나에게 정겹고 소중한 자리가 된다고. 그리고, 분명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삶이 힘겹게 느껴지는 순간에, ‘사은께서 또 진급의 기회를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이 기회로 반드시 크게 진급하리라’는 믿음과 서원을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구(詩句)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 꽃봉오리인 것을!”

/강남교당

[2022년 1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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