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진아 교도] 러시아 모스크바 유학 시절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됐다.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나를 원불교의 사은과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교리가 세상을 향한 관점과 태도를 180도 바꿔줬다.

바쁘다며 출석만 겨우 하던 때, 이전 직장에서 본의 아니게 사내 정치 싸움에 휘말렸다. 상사의 괴롭힘을 받으며 힘들게 지내다 결국 작년에 퇴사를 하게 됐다. 퇴사 후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소태산 대종사님의 법문이 떠올랐다. “일이 없을 때는 항상 일 있을 때 할 것을 준비하고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일 없을 때의 심경을 가질지니, 만일 일 없을 때 일 있을 때의 준비가 없으면 일을 당하여 창황전도를 면치 못할 것이요.” 현재의 내 모습이 바로 ‘일 없을 때 준비하지 않고 일을 당하여 창황전도하고 있는 모습’임을 깨달았다. 평소 공부를 게을리했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나태하게 공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강남교당 청년회에서 선배들의 공부심에 자극받으며 도반들과 즐겁게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청년회에 보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강남교당 청년회 담당인 박지호 교무님과 상의를 했다. 

미라클모닝, 챌린지, 루틴, 명상 등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자기계발 아이템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것이 멋져 보여서 따라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교법과 다를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소태산 대종사님의 유무념 공부법과 일기법은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라는 진리를 기반으로  속 깊은 공부를 하게 하는 지속가능성까지 무장하고 있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도반들과 함께 우리 공부를 재미있고 멋지게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무님은 유무념 공부 소모임을 제안했고, 나는 바로 구상을 시작했다. 
 

도반들의 21일간의 
감상을 읽으면 
변화에 뿌듯하고 
힐링도 된다.

지금까지 여러 교화단과 소모임에 속해 공동 유무념을 해왔다. 하지만 늘 처음 마음과 달리 마지막에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쉬웠다. 이에 대비하고자 교무님과 도반들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시스템을 만들었다.

첫 번째, 매월 새로운 참가자를 모집해 월별로 유무념 기수를 달리해서 운영한다. 매월 첫 번째 월요일에 열리는 오픈 카톡방에 참가해 21일 동안 본인들의 유무념을 인증하는 방식이다. 한 기수가 끝나면 매월 새롭게 참가자를 모집해 끝이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두 번째 시스템은 줌을 통해 교무님과의 회고 시간을 시스템화 한 것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 오리엔테이션, 회고, 마지막 정리까지 4번에 거쳐 유무념을 어떻게 지켜왔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한 주간 각자가 정한 유무념 조항으로 공부하면서 생긴 의문을 문답하는 형식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지치거나 뒤처지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이 외에 IT기술을 활용해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공유해 본인의 공부 성적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매주 회고 내용을 회의록으로 정리해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매 기수가 끝날 때마다 설문조사를 통해 어떤 점이 좋았고 힘들었는지 의견을 받는다. 도반들의 21일간의 감상을 읽으면 이들의 변화에 뿌듯하기도 하고 스스로 힐링도 된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강남교당 유무념 공부 소모임인 ‘유무념보트’는 벌써 9기를 진행 중이다. 9기까지 총 21명의 청년들이 함께했다.

개인적으로는 좌선을 꾸준히 유무념 삼아 실천하고 있다. 좌선을 하다 보면 지난 회사에서의 부당한 경험들이 올라와 분노의 감정에 휩쓸리기도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이 올라와 펑펑 울기도 했다. 지금은 매일의 적공이 쌓여 마음을 바라보면서 올라오는 감정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지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내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예전 직장 동료들을 대상으로 참회의 기도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기수부터 참회 기도를 하고 있다.

강남교당 유무념보트 팀은 경계투성이인 우리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마음으로 유무념 공부법이라는 노를 저으면서 매일 매일 항해 중이다. 중간중간 게으름과 귀찮음이라는 파도를 잘 넘을 수 있도록 서로를 응원하며 나아간다. 선진들께서 왜 원불교는 함께 공부하는 법이라고 했는지 조금씩 몸으로 깨닫고 있다. 

아홉 번의 유무념보트를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다. 나는 공부에 있어 매번 정성심이 적고 끈기가 없었다. 작심 하루로 끝나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1기부터 선장이 되어 매일매일 내가 하기로 한 것과 하지 않기로 한 것을 주의심을 가지고 체크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먹고 실행할 수 있는 마음의 실행력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사실, 진행하면서 도반들에 대한 경계도 많았고 ‘나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는 아상에 빠지기도 했다. 다른 교우를 보면서 ‘왜 열심히 공부하지 않지?’라는 오만한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떤 교우들은 법회에 일찍 와서 방석을 챙겨서 놓기도 하고, 어떤 교우들은 새로운 도반들이 오면 안내를 해 주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저 각자의 공부 방법에 차이가 있고, 공부하는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임을 이제는 알아가고 있다. 

‘범부가 변해 부처가 될 때까지’ 유무념을 통해 스스로를 가르치고 깨우치는 데 끝까지 쉬지 않고자 한다.

※ 위 글은 원기107년 전국 청년 교리실천강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강연입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