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일연 교도
채일연 교도

[원불교신문=채일연 교도] 아메리카너구리과 동물인 라쿤은 귀여운 외모와 사람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 애완용은 물론 야생동물카페 등에서 전시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2020년 6월 환경부는 라쿤을 ‘생태계위해우려 생물’로 지정했다. ‘생태계위해우려 생물’이란 생태계 등에 유출될 경우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거나 줄 우려가 있는 생물을 의미한다. 

라쿤은 어쩌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혔을까? 환경부는 개인사육 및 전시 개체가 증가하면서 그중 일부가 탈출 또는 유기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생존능력이 우수해 국내 고유종인 삵, 오소리, 너구리 등과 서식지를 두고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한다.

‘생태계위해우려 생물’이라는 꼬리표도 억울하지만, 야생동물카페라 불리는 전시·체험시설에서의 삶도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가 발표한 ‘2019 야생동물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야생동물카페에서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임신을 한 개체나 갓 젖을 뗀 것으로 보이는 새끼를 전시에 이용하는 행태가 확인되기도 했다. 좁은 공간에 오랜 시간 방치돼 정형행동을 보이는 개체가 다수 발견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국내로 들여온 많은 야생동물들이 라쿤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지난 24일 ‘동물원수족관법’전부개정법률안과‘야생생물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부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은 동물원·수족관의 허가제 도입과 허가 취소 및 영업정지 관련 규정 신설, 검사관제 도입 등을 통해 보유동물의 적정한 관리가 이뤄지도록 제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또 이동전시 행위 금지, 불필요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동물쇼를 제한했다.

동물원수족관법과 함께 개정된 야생생물법은 ‘지정관리 야생동물’의 수입·반입, 양도·양수 원칙적 금지, 동물원 및 수족관 외 시설에서의 야생동물 전시 금지, 유기 또는 방치 우려가 있는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한 시설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야생동물의 생산·수입·판매·위탁관리영업에 대해서도 허가제를 도입하고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 등의 행위를 한 자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을 수 없도록 결격사유 규정도 마련했다.

법안의 내용만 본다면 그동안 무분별하게 이뤄졌던 야생동물의 수입, 번식, 전시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단순히 법을 개정한다 해서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동물생산업이 허가제로 전환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불법생산업이 음지에서 성행하고 있으며, 동물학대 처벌조항이 몇 차례에 걸쳐 강화됐지만 동물학대범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라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의 사례처럼 개정된 법들이 단순히 문언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동물과 인간의 삶을 지키고 복지를 향상시키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정부는 법시행에 맞춰 하위법령 정비와 법에서 정한 바를 성실히 실행해야 한다. 사법부도 엄정한 법집행으로써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우리 시민들 역시 이들의 행보를 감시하고 끊임없이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 그것이 고통과 희생으로 법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동물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자 최소한의 예의다.

/불광교당

[2022년 1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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