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훈 교무
길도훈 교무

[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수행자가 만행을 마치고 나면 자신 수행에서 미진한 부분이나 내면화가 완전하지 않은 부분이 드러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보림이 꼭 필요하다. 보림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한자 보임(保任)이라고 쓴다. 그러나 한글로 쓰고 읽고 말할 때는 보림이라고 한다. 이는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으로 본성에 깨어 존재함을 내면화하기 위한 수행이다.

수행자라면 보림의 필요성을 틈틈이 절실하게 느낀다. 선방에 가서 공부할 때는 어느덧 견성한 것 같고 부처가 된듯 싶다가도, 생활하다 보면 현실에서 솟구치는 감정과 관념과 습관에 잠식되어 그 마음은 사라지기만 한다. 지난날과 별로 달라진 게 없자 자괴감마저 들어 선방에서의 심정을 되돌려 봐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그 마음이 내면화되지 않았기에 감정이 끓어오르면 그 마음은 무색해지고, 예기치 않은 경계에서는 그 마음을 적용할 줄 몰라서 헤매게 된다.

그런데 만행 후 보림은 이런 소소한 습관 길들이기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견성을 온전하게 내면화하기 위한 보림이니 말이다. 이 보림은 진리에 대한 인식과 삶에 대한 통찰 그리고 삶의 모든 면에서 법도에 맞는 정도에서 시작된다. 누가 봐도 도인의 심법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통찰해 보면 아직도 미진이 있고 경계에서의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만행으로써 더욱 면밀히 살펴 미혹함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내면화하려는 보림이니 이는 크고 넓고 깊고 힘이 있다.

보림은 임신한 여인이 태교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 조선시대에는 임신하면 친정으로 갔다. 친정이 아무래도 마음 편안하기 때문이다. 태교에서는 임신한 사람이 심신 편안한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정 기복을 야기할 상갓집, 잔칫집, 싸우는 곳, 춤추는 곳 등은 피한다. 나아가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위험할 수 있는 밥상 모서리에도 앉지 않는다. 반면 마음 안정과 마음을 모으는 선이나 뜨개질을 하고, 의식을 편안하게 일깨우는 노래를 듣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지혜로운 이를 만나 담소 나누는 것을 장려한다.

이처럼 보림도 심신 편안한 스승 또는 도반이 있는 곳이나 한적한 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 외출은 가급적 하지 않고 좌선·행선을 주로 하며, 경전을 읽고 한 문장으로 축약한 의두·성리를 마음 주머니에 두고 살핀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는 성품에서 발현된 마음과 행동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로써 마음이 텅 비어 하늘과 맞닿게 되고, 일상은 성품에서 발현되는 경로로 나타나는 것이 체화되어간다. 나아가 모든 이치와 일이 성리로 깨어 하나로 정리된 것이 생활 전반으로 나타난다. 이윽고 우주가 품에 들어와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새살이 돋은 것과 같아서 아직 여리기만 하다.

[2022년 1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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