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훈 교무
길도훈 교무

[원불교신문=길도훈 교무] 인간이라면 죽을 때까지 꼭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 이생에서 즐겨하던 습관과 마음속에서 갈구하던 것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생의 업과로 이어지게 된다. 내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여유마저 없으면 해결되지 않은 일의 주위를 영혼으로서 떠돌 수 있다. 임종에 다다른 사람에게 주위 사람들이 마지막 소원이 뭐냐고 묻는 것도 이런 업과를 막기 위해서다. 죽어갈 때 여한이 없어야 그 영혼이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날 수 있다.

‘해야 할 남은 과제’는 수행의 완성을 위해서도 해결이 필요하다. 수행자의 우선 과제는 인간의 삶에서 반드시 있게 되는 재색명리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채 수행 적공을 한들 제자리를 면할 수 없다. 게다가 수행한답시고 재색명리를 체면치레로 덮어둔 채 세상을 떠나면 내생에는 재색명리의 밑바닥에서 헤맬 수 있다. 덮어 갈구함의 에너지는 엄청 세기 때문이다. 이런 과제는 수행자든 고위 성직자든 쉽게 해결될 게 아니다.

진정한 수행자라면 자신을 진솔하고 면밀히 살필 줄 안다. 그동안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난 곳에서도 도로써 평상심이 이어진다. 그러나 쉽지 않다. 경계 없이 순탄하게 이룬 수행의 경지에 안주할 수 있고, 용모단정한 성직자의 청초하고 고고한 모습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정화시켜 주니 좋다며 안주할 수 있다. 이로써 대우받으며 편안하게 살 수 있어도 수행의 관점에서는 온실의 화초처럼 나약하기만 하다. 시끄러운 경계,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을 반대하거나 비난, 그동안의 위상이 손상되는 것 등에 화내거나 토라지거나 병을 얻기 십상이다. 또한 마음속에서 갈구하던 것이 다가올 때는 대의 없이 은근슬쩍 받아들일 수 있다. 수행의 본의가 무색해져 버린다.

수행의 본의를 생각한다면 수행자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보다 내면을 진솔하게 바라보며 수행의 길에 진심이어야 한다. 그만큼 영성은 길이 영롱하게 빛난다. 내면의 문제는 교리로,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성리로, 수행으로, 봉공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다. 이로써 자신 수행이 어느 정도 이루었다 싶을 때 재색명리의 경계에 자신을 맡기고 살펴 미혹함을 이생에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만행(萬行)이다. 만행은 여행이 아니다. 처절한 자기 내면의 진솔한 몸부림이다. 시장에서 일을 하든, 환락가에서 봉사를 하든, 내로라하는 학자나 권세가를 만나든 경계에 무명의 낮은 자세로 임해서 털끝만 한 미혹도 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윽고 업인이 해결된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가 만행을 떠난다고 할 때는 주위에서 시간, 금전 등으로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봐서는 안 된다. 다만 수행의 일대사를 해결했는지 물을 수 있으나, 그의 기운과 눈빛은 이미 모든 것에 화답한다. 

[2022년 12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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