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인간의 삶의 주기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흔히 발달 주기에 따라 태아기부터 노년기로 구분하기도 하고 10대, 20대로 보는 방법 등 다양하다. 이중 교육이 이뤄지는 시기를 ‘학창 시기’라고 하여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는 기간으로 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태교를 말하지 않아도 배워야 할 내용도, 시기도, 방법도 전혀 다르다. ‘평생교육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삶이 교육이다’고 가르쳐 준 사람은 참으로 많다. 

일찍이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어느 한 가지에만 능한 것은 아니(君子不器)’라는 것이다. 산파술을 가르쳐준 소크라테스는 교육이란 ‘일깨움에 의한 삶의 방향전환 작용’이라고 했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의한 인간의 자기회복을 강조했고, 예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조선 시대 유학자였던 퇴계 이황(1501~1570)도 높은 뜻을 세우고 진리를 탐구하며 지행일치를 다지는 선비정신을 일러줬다.

페스탈로치(1746~1827)는 인간됨을 일깨우는 학교, 정신과 도덕, 신체적 능력을 갖추는 삼육론, 생활에서 경험을 통한 교육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기 위해서 노작(Arbeit), 독서, 인간화, 대화, 각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가까운 일본의 오바라 구니요시(小原國芳, 1887~1977)는 자신의 <전인교육론>(1921)에서 온전한 인간교육을 위해 영혼(종교), 가슴(예술), 도덕, 머리(학문), 몸(건강), 손발(생활:직업교육)의 여섯 가지 도야를 제시한 바 있다. 한국의 가톨릭 고등학교도 몸과 정서와 영성 도야를 통한 사회에 봉사하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을 강조하는 학교도 있다(PESS 프로그램).

이에 비해 소태산 대종사는 사람됨의 교육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전>에 그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삶이 교육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삶이 교육이라는 가르침의 내용은 이렇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람됨의 교육이란 시간적으로 이생에만 하는 평생교육을 넘어 영생을 일관하는 교육’을 말한다. 공간적으로는 가정, 사회, 학교, 대하는 곳, 대상을 모두 망라한 교육이며, 심신을 움직이는 공간과 시간에 교육이 있음을 가르친다. 

여기에는 아침에는 자기를 찾아가는 교육, 저녁에는 참회 반성하고, 낮에는 개인, 국가, 사회를 위해 일하는 노작, 직업교육이 함께 한다. 그 밖에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에 시간과 공간을 통합한 예는 많다. 처처불상 사사불공, 이사병행, 과학과 도학의 병진, 영육쌍전, 정기훈련과 상시훈련 등 교리 전반에 걸쳐 궤를 같이하며 알려주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영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종교 틀을 넘어선 가르침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저술한 <조선불교혁신론>(1935)은 불교를 예로 들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든 종교의 혁신을 언급한 것이다. 직업, 결혼문제를 각자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또는 자기 의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종교에서는 보기 힘든 시대와 공간을 넘어선 종교혁신의 선언이다. 

물론 인간의 삶에서 경제와 결혼문제가 중요하지만, 종교에서 그렇게 인식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것이 삶의 한 축임에는 틀림이 없다. 소태산 대종사가 종교에서 정면으로 이를 수용한 뜻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원광대학교 

[2022년 1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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