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혜 사무처장
조은혜 사무처장

[원불교신문=조은혜 사무처장] 어느 날 갑자기, 귀농하는 부모를 따라 시골살이를 시작했다가 대학생이 되어 다시 서울살이를 시작한 청년 H의 이야기다. 

알바와 공부에 ‘쪼들리며’사는 H는 문득 시골살이의 풍요로움과  서울생활을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서울에 살면서 가장 자주 맞닥뜨리는 선택의 조건은 편리함이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까지 걸어서 몇 분이 걸리는지, 새벽 배송이 되는 지역인지, 동네라는 친숙한 이름이 아닌, 지하철 역세권인지가 중요하다는 조언을 듣는다. 맛있는 가정식 백반집이 있는지, 여가시간을 보낼 공원이나 또래 모임이 있는지 등의 다른 것은 물어볼 기회를 갖기 어렵다. 새벽배송은 커녕 버스가 하루에 열 대도 다니지 않는 촌동네에서 살던 H는 ‘편안하고 이롭다’는 뜻의 편리한 생활이 어떤 것인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한번은 SNS에서 광고 영상을 보게 됐다. 영상 속 남자는 네모난 박스에 담긴 배달음식을 먹고 난 후 쓰레기들을 모조리 박스에 담아 버리고 후련하다는 듯 손을 턴다. “플라스틱 용기에 달라붙은 기름기를 애써 헹궈낼 필요도, 입가를 닦느라 사용한 휴지를 따로 버릴 필요도 없다”는 자막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강조된다. 제공된 박스에 쓰레기를 넣어 현관문 앞에 두기만 하면 세척과 분리배출을 대신 해준다는 쓰레기 배출 대행 서비스 광고다. 약간의 비용으로 지저분하고 귀찮은 것들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어 준단다. 자원 재활용에 기여하는 친환경적인 서비스라는 광고 문구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데 그 뒤에는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음식을 다 먹고 플라스틱 용기를 씻어서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에 내놓을 때면 죄책감은 한층 더 짙어진다. 그래서 되도록 플라스틱 포장재를 덜 쓰려고 노력하는데 광고를 보니 이런 죄책감까지 말끔히 치울 수 있다는 유혹처럼 느껴진다. 재활용 배출을 전문업체에 맡기면 정말 이런 스트레스가 줄어들까? 생활 속 자잘한 노동이나 노력에서 벗어나면 그 시간을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마침내 편안하고 이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될까?

H와 같은 생각을 한 편의 시로 이야기한 사람이 있다. 미국인 목사 밥 무어헤드(Bob Moorehead)는 ‘우리 시대의 역설’을 알려준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더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편리를 최우선 가치로 신봉해왔는데 그 결과는 반전인 셈이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주며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수명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H는 다회용기와 텀블러, 장바구니를 챙겨 다닌다. 편리하다는 말이 주는 착시와 광고의 유혹에서 벗어나 세계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고 편리의 여러 선택지 중 에서 선택한 일이다. H는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대부분 무언가에 대한 분리와 해방이 아닌 관계와 연결감에서 생겨났음을 안다. 편리는 ‘편안하고 이로운 생활’이라고 믿기에 무엇이 진정으로 편리한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 챙겨본다.

/원불교환경연대

[2022년 1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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