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32상 혹은 외형(身相)으로 여래를 볼 수 있냐는 내용은 <금강경> 5장, 13장, 27장에 나온다. 32상은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이 가졌다고 하는 32가지 특징적인 외모다. 32상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여래의 몸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특징’이다. 발바닥이 편평하다 등 32가지인데, 우리가 절에서 보는 불상에 이 32상이 담겨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강경>은 조금 다르게 말한다. ‘32상 혹은 색신으로는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외모로 여래를 찾으려는 것은 헛된 것임을 반복해 말한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여래가 어떤 외형적 특징을 가진다는 생각(相)을 놓으라는 것일까?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자. 여래는 보통 사람의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이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왔다 가는 분이 아니라는 뜻은 아닐까? 

기독교 신자는 메시아를, 불교도는 미륵불을 기다린다. 세상이 힘겨울수록 사람들은 나를 구원해줄 절대자를 염원하고, 그 절대자에 귀의하면서 힘든 삶을 극복하기도 한다. 이와 다르게 <금강경>은 혹시 ‘너를 구원해 줄 메시아나 미륵불을 기다리지 말고, 네가 너의 삶을 개척하고 세상을 구원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혜능도 각자의 실천을 강조한다. 혜능은 ‘32상이란 32가지의 청정한 행동’이라고 풀이한다. 오근(五根)으로 수행하는 육바라밀과 의근(意根)으로 하는 무상(無相), 무위(無爲)의 행위가 32상이라고 했다. 이 32청정행을 닦아야만 성불을 한다. 여래의 32상을 애착하면서 스스로 32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결국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풀이하면, 소태산 대종사가 말한 미륵불도 비슷하게 읽힌다. “미륵불이 어떤 분이고, 용화회상은 어떤 회상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소태산 대종사는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용화회상은 크게 밝은 세상이니, 곧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널리 행해지는 것이니라”고 답을 할 뿐이다.(<대종경> 전망품 16장)

말과 글은 여래를 만들지 못한다. 부처의 외모, 수행, 지혜, 법력, 공덕, 자비를 칭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여래가 되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몸으로 육바라밀을 실천하고 그 가운데 무념·무위에 머물고자 몸부림쳐야 한다. 입으로 심오한 진리를 말하는 것보다 작은 것이라도 보시바라밀을 실천하며 나의 마음을 반조하는 것이 더 귀하다.

소태산 대종사도 삼학 팔조 사은 사요의 간략한 교리로 불법의 핵심을 담았다. 이것을 머리로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다만 몸과 마음을 움직여서 배운 것을 실천함으로써 여래를 볼 것이며, 다가오는 미륵불의 세상·용화회상의 첫 주인이 될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12월 19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