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교무
김성근 교무

[원불교신문=김성근 교무]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각을 하시고 “내가 난 길용리는 가난 제일, 무식 제일”이라며 가난하고 무식한 길용리 약자들을 위해 저축조합을 만들고 정관평 방언공사를 하셨다. 과거 성자들과는 다르게, 나고 성장하고 구도하신 곳을 달리하지 않으시고 영광 백수 길용리에서 대각을 하셨다. 

결국 근동의 인심을 얻어서 회상을 열으신 토대는 대각 후 9인제자들과 함께 정관평 방언공사를 마무리하고 난 이후 일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최초법어가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으로, 실지 약자들을 위해 버려진 갯벌을 막아서 가난한 약자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게 했다. 법과 생활을 함께 아우르는 새 회상의 근본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당시 인근 주변의 지주와 소작인의 임대율은 5:5 내지 6:4 정도로 수탈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는 방언공사를 마치고 조합원들에게 경작을 분배하면서 조합은 수확량의 3할, 그리고 경작인들은 7할을 가지게 했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혁명적이어서, 소문은 인근 마을과 영광지역으로 퍼져 소태산 대종사께 인심이 몰리기 시작했다. 광복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농지개혁법이 두 차례 시행된다(1949년, 1968년). 수확의 일정률을 5년간 국가에 상환하면 경작인이 경작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당시 정관평에서 경작을 하던 지역민들은 이 농지개혁법에 따른 본인들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시고 가난한 약자인 주민들을 위해 당시로는 생각지 못할 분배율로 자신들을 보호해 준 것에 대한 보은의 도리였다. 엄밀한 사회적 표현으로, 이들의 보은 도리로 인해 광복해방 이후 유일하게 정관평에서 지주와 작인의 관계가 작동하는 소작제가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 후 영산성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경작인들의 경작권을 당시 농지가의 실제 가격에 가깝게 교단이 매입하면서 정상적인 토지 소유권 정리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의식도 혼란스럽다. 과연 앞으로 원불교의 지속적인 성장은 가능한가? 이제 원불교가 결실교단에서 결복교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잘 살펴봐야 할 부분 또한 소태산 대종사께 세상의 인심이 모인 이유이다. 
 

사실적 약자 보호에 대한 
실적이 없으면 세상은 
우리를 외면할 수 밖에 없어.

시절의 변화로 약자에 대한 해석도 변했다. 과거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물질이 부족하고 지식과 정보의 전달이 용이롭지 못할 때 약자의 모습과는 달리 오늘날 약자들은 구조적인 빈곤감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것에 대한 판단을 심도 있게 분석해야 한다. 

한 때 지속적인 노력으로 원불교가 국내 4대 종단 반열에 올랐다. 흔히 오만년 대운의 새 회상이라지만 그 대운은 외침으로 오지 않는다. 자칫 소태산 대종사의 업적만 드러내고 실지 각자 각자의 사실적 약자 보호에 대한 실적이 없으면 세상은 우리를 외면할 수 밖에 없다. 특히 4차산업 디지털시대에 약화된 정신력으로 인한 고독과 우울, 치매, 자살 등으로 내몰리는 약자들을 위한 사실적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한국 사회는 2030년이 지나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사회적 약자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예측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교화 방향은 콕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소태산 대종사께서 회상을 열면서 영광 백수 길용리 현지 약자들을 위한 교화의 방향로를 직시해 보면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될 것이다.

원론적인 주장과 외침에서 사실적으로 약자들을 위하는 교화사업들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상계교당 

[2023년 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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