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막고 천지보은을 위한 진실된 실천은 나무심기다. 원불교환경연대의 ‘나이만큼 나무를 심자’ 캠페인은 매월 1회 나무와 만나는 칼럼으로 독자를 만난다. 
 

박상진
박상진

[원불교신문=박상진] 우리 역사에서 궁궐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무공간이자 왕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이다. 따라서 건축물을 조성하면서 휴식을 위한 자연 공간으로 정원을 만들고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전란 등 역사의 풍상을 거치며 궁궐 건물은 불타 없어졌다가 새로 짓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나무들만큼은 수백 년의 풍상을 겪고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창덕궁에서 왕의 휴식 공간인 후원(後苑)에는 우리 토종나무 식생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후원 나무 중 약 1/4은 참나무다. 이어서 때죽나무, 단풍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순으로 많다. 특히 참나무 중에는 갈참나무가 1/3이나 된다. 갈참나무는 중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적당한 습기를 지닌 낮은 구릉지에서 자라는 나무다. 때죽나무나 팥배나무는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 숲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무다. 이런 나무들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심은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후원에서 자라는 나무들이다. 

초화류로는 국화, 난초, 연꽃, 파초 등이 있다. 특히 초화와 꽃나무들은 계단식 화원인 화계(花階)에 주로 심어 왕비 등 궁궐의 여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후원은 왕의 휴식처라 일부러 나무를 심기도 했지만, 본래 우리의 조경은 자연 순화의 개념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표현했다. 그래서 후원은 큰 식생 교란 없이 잘 보존되고 있다.  

19세기 초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린 ‘동궐도’에는 소나무를 비롯 약 20여 종의 나무가 다양한 색으로 그려져 있다. 오늘날 식생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소나무, 잣나무 등의 큰 나무를 비롯해 매화, 개나리, 철쭉 등의 꽃나무가 보인다. 또 꽃으로 완상하고 열매는 과일로 먹을 수 있는 복사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등도 찾을 수 있다. 

창덕궁에는 현재 약 1백여 그루의 고목나무가 있다. 나이 백 년 이상, 굵기는 한 아름이 넘는 나무들이다. 느티나무가 40그루로 가장 많고, 회화나무 18그루 등 총 15종의 고목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 우선 창덕궁 규장각의 터줏대감인 향나무는 그 나이가 750살이 넘는다. 조선왕조가 세워지기 전 고려 말부터 둥지를 튼 셈이다. 궁궐 제사 때 신을 불러오는 향을 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향나무가 있어야 했다. 대팻밥처럼 줄기가 벗겨져 향로에 태워지는 아픔을, 긴긴 세월 동안 견뎌낸 나무다. 정문인 돈화문 안쪽 왼편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나무 밑에서 고위 관리들이 잠시 쉬며 정치문제를 논의하던 중국의 예를 따른 것이다. 대체로 전쟁 때 궁궐이 불타고 난 후 새로 지을 때 심은 약 4백년 된 고목들이다. 

후원에 가면 느티나무 이외에도 왕비가 누에치기 시범을 보이기 위해 심은 뽕나무, 제사용 밤나무 등 여러 고목나무를 만날 수 있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온 우리 궁궐의 고목나무들은 생물다양성 보존 뿐 아니라 우리 역사 문화의 정체성을 잘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고목나무들을 아끼고 보존해야 할 것이다.

/경북대학교 명예교수ㆍ원불교환경연대 자문위원
 

[2023년 3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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