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민 교무
고해민 교무

[원불교신문=고해민 교무] 지난해 원남교당에 부임하고 설렘과 기대 속에 첫 법회를 봤다. 하지만 설교를 듣는 청년들의 표정은 알쏭달쏭한 표정이었고, 설교를 주제로 한 회화는 10분 만에 끝나버렸다. 다음 주도 그 다음주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잘못됐을까? 법회 방식을 바꿔야 하나? 야외활동을 할까?’ 고민하며 지난 법회 시간을 되돌아봤다. 그동안 내가 준비했던 법회는 교리를 설명하는 식의 설교와 그에 대한 회화로 이뤄졌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교리’에 큰 관심이 없었고, 교리가 생활에 바로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청년법회는 토요일 오후 5시다. 모든 곳에 젊은 사람이 북적북적하고 활기를 띠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가로질러 교당으로 향하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이어졌다. 

‘탈종교 시대, 원불교가 이 시대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종교에 무엇을 기대할까? 법회는 무엇을 주어야 할까?’ 결론은 ‘고민 해결’과 ‘마음과 생활의 변화’였다.
바로 설교계획을 바꿨다. 그동안에는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예화를 들어 설명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들의 고민과 관심사를 교리로 해결해주고자 했다. 인간관계, 학교·직장생활, 미래, 자존감, 가족 갈등 등 겉으로 드러난 문제부터, 청년들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변화, 반복된 갈등 등을 해결할 마음의 문제로 인식시키고 다방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설교의 종착역은 항상 ‘각자의 마음’에 다다랐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게 빼앗아 가는 주변 상황과 인간관계 속에서 내 마음을 지키고, 내 마음으로부터 해결책을 찾아가자는 것이 주된 흐름이었다.

이후 회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시간가량 회화가 이어지고, 설교원고와 녹음파일을 원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또 개인별로 문답을 요청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회화 때 이야기하기 어려운 개인적 고민을 문답하고 공부하면서 점점 청년들의 마음이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어느 날 시험을 앞둔 청년이 기도를 부탁했다. 내가 “기도는 네가 해야지”라고 하자 그는 “교무님이 그래도 진리의 위력을 가장 잘 받잖아요”라고 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진리의 위력을 부려 쓸만한 정성을 가진 교무일까?’ 반조하고 되돌아봤다. 생각은 ‘앞으로 나부터 자신할만한 마음의 힘을 가져야 한다’는 데 다다랐다. 결심 후 1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청년교화가 잘 되기를 염원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 마음에 청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심 없는 정성을 쏟을 지혜와 힘을 서원하는 기도였다. 

그러던 중 원남교당이 봉불식을 하고 새 도량에서 교화를 시작하게 됐다. 감응이 있었는지 봉불식 이후 청년들이 교당으로 모이고 있다. 교당 근처 혜화동과 종로에 사는 청년들과 외부 행사를 통해 법회에 나오게 된 청년들, 모스크바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온 청년 등 새로운 인연이 끊임없이 맺어지고 있다.

마음에 관한 관심은 누구나 있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내 마음’, 거기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와 고민을 가진 청년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원남교당

[2023년 3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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