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생각해보면 그랬다. 집에서 한참을 걸어 일명 ‘명동거리’인 시내에 나가면,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했던 곳은 옷 가게도, 돈가스집도, 커피숍도 아닌 레코드 샵. 

우람한 산맥이 그려져 있고 파랗고 빨간 딱지에 알파벳이 멋지게 새겨져 있는 카세트테이프. 그리하여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비발디의 사계, 베토벤의 운명,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까지, 알뜰히 용돈 챙겨 하나씩 사 모았던 카세트테이프는 내 재산목록이었다. 

어디 클래식뿐이겠는가. 당시 스무 살 처자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 ‘절대 손 대면 안 됨’이라는 메모까지 붙여놓고 애지중지했던 그 카세트테이프는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나의 애장품이다. 그렇게 클래식, 영화음악, 추억의 팝송 등 분야별도 카세트테이프를 각 맞춰 진열해놓고 감상했던 호사 시절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는 테이프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감기는 소리와 함께 ‘딸깍’하고 순서가 바뀌는 소리가 들린다. 일명 ‘워크맨’의 배터리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되감기 버튼을 누르는 대신 테이프 한쪽 구멍에 연필을 넣어 돌렸던 ‘깜찍한’ 추억도 새롭다.

이쯤에서, 민간요법처럼 전해지는 카세트테이프의 복원 방법. 냉동실에 넣고 10분이면 늘어진 카세트테이프가 멀쩡해진다는,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인 비법을 아시는지. 

뉴트로 시대, 코로나 블루와 레트로 감성을 타고 카세트테이프가 전성시대를 맞이했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우울감을 극복해준 것이 있었으니, 일명 ‘돌아온 카세트테이프’라고. 아날로그 매체가 전해주는 추억 보정의 매력이 마음까지 방역해주는 효과가 있다니, 새삼 신기하고 흐뭇하다. 

마지막으로 추신을 하나 보탠다. 화려한 눈화장과 실로 어마어마한 고음으로 나를 매혹시켰던 팝페라가수 키메라의 카세트테이프를 친구에게 빌려주고 되돌려받지 못해 얼마나 속상했던지. 그 친구 이름을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2023년 3월 29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