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훈 교무
박세훈 교무

[원불교신문=박세훈 교무] 원불교 교단의 최초 성립은 원기 원년(圓紀 元年·1916·병진) 4월 28일(음력 3월 26일)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과 더불어 시작됐다. 그러나 종교공동체로서 형성된 것은 그해 7월경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소식을 듣고 모여든 40여 명의 신도 무리에서 8인의 표준제자를 정함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것이다. 

이 공동체는 초기부터 단(團)이라는 조직에 의해 관리됐다. 이 조직은 조직의 통솔기능은 물론 종교공동체의 신앙과 훈련기능도 수행했다. 이후 창생구원을 위한 새 회상 건설의 전초적 준비기관 성격의 ‘저축조합’이 창설됐고, 이를 기반으로 정관평 방언공사, 구수산 혈인기도 등의 초기교사가 이뤄졌다. 이때까지 소태산 대종사와 9인 제자의 종교공동체는 특별한 공동체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내부적으로 ‘회상(會上)’이라 칭했고, 외부에서는 ‘저축조합’이라고 불렀다(정산종사에 의해 저축조합 당시 ‘대명국영성소 좌우통달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 左右通達萬物建判養生所)’라는 임시 교명을 가진 일이 있었던 것으로 술회되고 있으나, <교사> 또는 <불법연구회창건사> 등에는 언급이 없음).

이후 원기4년(1919) 10월에는 기존의 저축조합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불법연구회 기성조합(佛法硏究會 期成組合)’을 설립했다. 이때 소태산 대종사는 앞으로 모든 기록에 불법(佛法)의 명호를 사용하도록 하는 동시에 불법(佛法)이 주체가 되는 새 회상의 건설을 만천하에 천명한다. 

그 후 원기9년(1924) 4월 전북 익산 보광사에서 새 회상 창립총회를 열게 되는데, 여기서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교단의 공식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불법연구회라는 교명은 그 이름에서 나타나듯 정식 교명이라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직접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한 방편적 성격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광복 이후 교단은 체제를 크게 정비하면서 교명 역시 새 회상에 걸맞은 개칭을 논의했다. 논의 결과 ‘원불교(圓佛敎)’라 내정하기에 이르렀고, 원기32년(1947) 1월 국가로부터 ‘재단법인 원불교’를 정식 등록 인가 받음으로써 비로소 원불교라는 새 회상의 정식 교명이 성립됐다. 그로부터 1년 후 원기33년(1948) 4월 <교헌>을 제정하고 아울러 교명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교명선포식’을 가졌다. 이로써 ‘원불교(圓佛敎)’라는 정식 교명은 완전한 공인을 얻기에 이른다.

/수위단회사무처

[2023년 05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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