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개교절 특집] 소태산 대종사 발길 닿은 교당

대각개교절 특별판으로 발행된 2117호(4월 19일 자) <원불교신문>에 실린 ‘소태산 대종사 발길 닿은 교당’중 초량교당과 마령교당의 내용  일부를 이정무 원로교무의 고증을 받아 다음과 같이 바로잡는다.

1. 초량교당:  남부민출장소 신축기념식에 이공주, 신영기를 대동하고 참석했던 소태산 대종사는 부산역에서 기차를 놓쳤다. 이후의 상황에 대해 2117호에 실린 글에서는 ‘소태산 대종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다음날 차를 타기로 하고 김성명화에게 말했다’고 되어있다. 해당 내용 중 ‘다음날 차’는 오기이며, ‘다음 차’가 역사적으로 맞는 사실이다. 

또 해당 내용과 관련, 당시 기차를 놓친 소태산 대종사 일행은 부산역 근처 이정혜(김성명화의 딸)의 집으로 향해 다음 차를 기다린다. 이에 대한 설명 중 ‘소태산 대종사는 이정혜의 집에서 이삼중행, 이영우, 김삼도화 등을 만났다’라는 내용에 있어 ‘김삼도화’는 ‘김필연’으로 기록돼야 맞다.

또, 원기21년(1936) 소태산 대종사는 초량 사립학교에서 1주일간 교리 강습을 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2117호에 실린 글에서는 ‘이 교리 강습을 계기로 김제준은 소태산 대종사를 생불님으로 알고 받들며’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김제준은 교리 강습 이전에 이미 입교한 상태였으며, 초량사립학교 교장으로서 소태산 대종사를 모셔 교리강습을 열 공간을 제공하는 데 적극 역할한 인물이다.

2. 마령교당: 마령교당 건설 역사 설명 가운데 ‘현재의 교당터는 과거로부터 영당평이라 불려졌던 곳인데,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터를 잡아주며 교당이 건설됐다’는 기록은 오기다. 소태산 대종사는 마령교당이 생기기 전 마령 지역에 방문한 적이 없다. 

마령교당은 원기9년(1924) 만덕산 초선에 참석한 최도화와 인연된 박대완이 담당해 건설했는데, 당시 박대완은 마령면장(송재수)의 집 사랑채에 머물며 교당을 지었다. 원기14년 5월 교당이 완성되자 교도들은 “종사주를 모시고 싶다”고 요청했고,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 8월에 조송광, 이동진화, 이청춘, 전음광의 장모를 대동하고 마령교당에 처음 방문한다.

[2023년 0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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