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겐스부르크교당 슈테판 교도

레겐스부르크교당 슈테판 교도
레겐스부르크교당 슈테판 교도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고요한데, 힘이 있는 고요함이었다. 그 고요함을 통해 내 안의 힘을 느끼게 됐다.”

선을 하러 간 곳에서 슈테판 교도(법명 도명)이 느낀 원불교에 대한 첫인상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는 원불교를 먼저 안 원법우 교무의 초대를 받아 선을 하러 가게 됐고 이를 계기로 원불교에 발을 들였다.

원기82년(1997)에 프랑크푸르트교당에서 입교한 그는 원불교 마음공부를 통해 스스로 변화된 점으로 “선 공부를 통해 내 안의 수평(Wassergleiche, 평정 또는 평온이라는 의미로 사용)을 찾았다”며 “선을 하면 내가 나를 잃고 헤매다가도 다시 나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원불교의 교리 중 가장 좋은 것으로 ‘원(圓)’을 짚은 그는 “끝이 없고,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이 큰 감명”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원 교무가 그랬듯 그 역시 주변 인연들에 “내가 죽는 것을 걱정하지 마라. 나는 49일이면 또 온다”고 말하곤 한다. 또 “네가 짓는 대로 받는다”는 말도 자주 한다고 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인과’를 표현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서구 사회인으로서 인과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을까. 

이에 대해 그는 “독일 베이언(바이에른) 속담에 ‘네가 숲에 이야기하면 숲은 너에게 메아리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며 “이 말은 곧 내가 준 대로 받는다는 말이기 때문에, 인과의 개념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련해 “세상의 여러 종교가 근본과 목적은 같지만 길은 조금 복잡한 것 같다”며 “서구 사회에서는 과학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원불교는 목적과 근본으로 향하는 길이 단순하고 선명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교당 활동으로 삶의 에너지를 얻은 첫 기억으로 그는 원기92년(2007) 콜핑하우스 대강당에서 열린 레겐스부르크교당 봉불식을 꼽았다. 이어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절집 공원과 함께 물부족 국가 지원 사업을 했던 일도 언급했다. “원불교에 대한 정보가 매스컴을 통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한 그의 말을 미뤄볼 때,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원불교를 독일에 알릴 수 있어 보람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슈테판 교도에게 교당은 ‘오면 기분이 좋고 행복한’ 곳이다. 이를 그는 ‘스스로 느끼는 신비로운 체험’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원불교의 가장 큰 장점으로 ‘열린 문, 열린 종교’인 것을 꼽았다. “강요하지 않고, 어떤 종교를 가졌든 누가 오든 받아들여 주는 열린 마음이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원 교무는 ‘늘 옆에 있었고, 지금도 늘 옆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원 교무를 “나에게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한 적은 없지만, 많은 만남을 통해 나의 길을 찾아가게 도와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육체적으로 만나지 못한 시간에도 정신적으로는 늘 연결돼 있었고, 혼자서 선을 할 때면 자주 ‘법우 교무는 어떻게 할까’를 떠올리곤 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나지막한 한 마디를 남겼다. “그때마다 법우 교무는 늘 내 안에 함께 있었다”고.

[2023년 6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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