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원 교무
이강원 교무

[원불교신문=이강원 교무] 교무가 되고 보니 1년에 한 번은 저 바닥 끝까지 내려가는 시기가 꼭 온다. 그때는 개인 수행을 멀리하게 되고, 교전을 펴는 일도 없어지며, 설교에도 공을 들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때에도 단 한 가지는 절대 놓지 않으려는 게 있다. 바로 ‘서원의 끈’이다. 

어두컴컴한 바닥에서 나는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수행에 소홀하고 공부를 놓아버리고 심신이 지쳤어도 마음 한 켠에서는 ‘해야지… 해야지…’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목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과 관념으로 이뤄진 내가 아닌 내면의 나, 본성의 내가 나를 일깨우는 목소리 아닐까 생각한다. 본성의 나와 육신의 나는 서원이라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서원의 끈이 단단하고 굵을수록 본성의 나와 가까워지고, 끈이 가늘고 약할수록 멀어진다. 살다 보면 끈이 얇아질 대로 얇아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마다 죽을힘을 다해 붙들어 매서 놓지 말아야 한다. 

끈은 나와 언제나 연결돼 있지만, 그것을 놓고 안 놓고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본성의 내가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다시 마음을 챙기다 보면 어느 순간 끈도 튼튼해지기 마련이다.
 

서원의 끈이 
단단하고 굵을수록 
본성의 나와 가까워지고, 
끈이 가늘고 약할수록 
멀어진다.

이 서원의 끈은 교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내가 일산교당에 왔을 때부터 청년회는 개설돼 있었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청년교도의 증가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는가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나의 역량 부족인가? 교화에 정성이 없었나?’ 이런저런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내가 들인 정성에 비해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때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그럴 때 본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고 또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 위력이 나타남을 알게 된다.

며칠 전 한 청년교도와 문답을 했다. 그 청년교도는 나에게 “나의 스승은 강원 교무님”이라는 말을 했다.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라는 말을 듣자 왠지 모를 부담감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는 스승의 모습과 나를 비교하면 한참 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청년은 매주 법회에 나온다. 나의 자신감이 넘쳐날 때도,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도 늘 흔들림 없이 와준다. 청년회 숫자가 많지 않아 그 청년 혼자 법회에 참석할 때도 많다 보니, 솔직히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땐 ‘청년이 안 왔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나는 서원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법회를 보고, 진심으로 청년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줬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누군가의 스승이 돼 있던 것이다.

대산종사께서는 “10년을 정진적공하면 자기가 안다”고 했다. 10년 동안 무엇이 나를 변화시켰는지, 나는 이제 확연히 안다. 대학교 새내기부터 지금까지 나와 연결돼 있었던 끈을 놓지 않았기에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 

청소년교화도 마찬가지다. 교화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놓지 않고 한 마음 챙겨서 하다 보면 ‘반드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일산교당

[2023년 7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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