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1980년대 초, 호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미 전무출신을 다짐하고 있던) 한 소녀는 생각한다. ‘원불교도 해외로 가야겠구나. 내가 가서 해야 되겠네?’ 그리고, 그 서원에 자연스레 덧붙은 생각 하나가 더 있었다. ‘한의학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마음과 몸을 함께 치유해주는 좋은 도구가 되겠다.’

그 생각이 씨앗이었을까. 박인선 교무는 교무가 된 지 20여 년 후 한의학 공부를 본격 시작하게 되고, 최근에는 침구사로서 펜실베니아주 탑 닥터(TOP Doctor)로 선정됐다. 현재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이하 미주선학대)에 근무하며 교무이자 한의사로 미국인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살펴주고 있는 그. 어릴 때 가졌던 해외교화 서원은 한 번도 변함이 없어서, 박 교무는 첫 발령 딱 1년만 빼고 31년째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몸과 마음 함께 치료하는 의사
“어안이 벙벙해요. 저도 모르게 선정된 거라 얼떨떨한데, 주위에서 많이 좋아해 주시네요.”
박 교무는 ‘탑 닥터’로 선정된 소감을 ‘얼떨떨하다’고 표현했다. 펜실베니아주 탑 닥터 선정은 의료서비스를 경험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해 이뤄지기 때문에 ‘환자들이 선정한 최고 의사’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러니 그 의미가 더 클 수밖에.
그는 현재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학교 내 클리닉 진료를 겸한다. 그의 진료 원칙은 환자 한 명당 최소 30~40분을 쓰는 것이다. 꿈자리가 뒤숭숭해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주나 청정주를 알려주고, 안정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선이나 단전호흡을 하도록 권하면서 충분한 대화를 통해 몸 치료와 마음 치료를 병행하게 한다. 이러한 치료법에 환자들은 미주선학대에서 운영하는 지역사회 선방으로 합류하게 되고, 그렇게 원불교 교리와 마음공부법에 젖어든다고 했다.
 

어릴 적 세운 ‘해외교화’ 서원… 32년째 미국 근무
교무이자 한의사로 ‘몸과 마음’ 함께 치유케 해
미국 펜실베니아주 환자 평가 통해 ‘탑 닥터’ 선정

무엇이든 ‘공심’으로
한의학 공부를 시작한 건 나이 50을 코앞에 두고서였다. 어릴 적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교화의 도구’로 한의학을 마음에 품은 지 30여 년만이었다. 한 해 두 해, 발령받은 임지마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도 왜인지 ‘한의학’에 대한 생각은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다. 미국 땅에 발 디딘 후 그는 ESL 프로그램부터 시작해 학부로 사회학, 석사로 종교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선택할 때마다의 기준은 명확했다. ‘어떻게 하면 교화에 도움 되는 학문을 할까.’ 교당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네일아트 자격증도 따고, 간호사 과정도 밟았다. 간호사 과정은 모두 마치지 못했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하고 노력해온 시간이 있어 어느 순간보니 침구학과 입학에 필요한 자격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오래 품은 또 하나의 서원이었지만, 시작을 앞두고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지만 2014년 미주선학대 침구학과에 입학하는 순간 고민은 저절로 사라졌고, 무엇보다 시작을 하고 보니 끝이 보였다.

그는 무엇이든 ‘공심’으로 한다고 했다. 뭔가를 한번 시작하면 대충하는 법도 없다.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진학하고자 마음먹었을 때도 ‘실력이 없어서 원불교학과에 가는 것’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 악착같이 공부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시작한 침구학 공부도 그랬다. 그냥 하면 침침해 잘 보이지 않던 글자들도 운동하면서 보면 선명해졌다. ‘공부를 하게 됐다’는 기쁨은 영어나 새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저절로 떨치게 했다. 좋은 동기들을 만난 것도 그에게는 큰 은혜였다.
 

원불교와 한의학 가교역할에 보람
미주선학대 침구학과 학생들은 2016년부터 매년 한국으로 한의학 연수를 온다. 이들을 인솔해 올 때마다 박 교무가 하는 생각이 있다. 바로 ‘내가 이 공부 하기를 정말 잘했다’이다. 교무이자 한의사로서 원불교와 원광대학교가 가진 우수한 자원과 인프라를 서구사회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음이 무엇보다 큰 보람으로 와닿는 것이다.

실제로 침구학과 학생 중에는 한국과 한국의 원불교를 경험한 후 원불교에 관심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일정 중 익산·영산 성지순례도 겸하는데, 이를 통해 현지인 학생들은 “뭔가 더 깊어지는 체험을 했다”며 “원불교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는 감상을 전해온다. 이에 미주선학대 침구학과에는 최근 원불교 개론 강의가 개설됐고, 두 학과는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영육쌍전’ 정신을 함께 실현해 나가고 있다. 최근 7월 17~27일 진행된 연수 기간 내내 비가 왔지만, 학생들은 ‘비를 잊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올해로 미주선학대에서 근무한 지 16년에 접어든 박 교무는 이전에 미국 내 5개 교당(시카고·뉴욕·마이애미·리치몬드·맨하탄)교화 경력 15년을 거쳤다. 그러니 미국 교화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터. ‘현지 교화 인재 양성’이라는 미주선학대의 사명과 현지에 맞는 교화를 위한 여러 노력에 함께 힘을 쏟는 이유다.

서구사회에서 원불교의 미래 비전에 대해 그는 “심플한 상징(일원상)과 ‘네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가르침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독교 사상에서 내재된 ‘종교성’이 교회와 성당을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찾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무던히 전하지만, 30년 넘는 세월에 힘듦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런 사연은 말로 하지 않아도 눈빛과 마음으로 전해져 그냥 알게 된다. 박 교무가 말한다. “네일샵에서 일할 때, 사실은 남들의 손·발톱 밑 때를 빼는 일을 하는 건데… 그 일을 하면서 생각했어요. ‘나는 지금 부처님의 발을 씻는 일을 하고 있다’고요. 제가 미국으로 떠날 때 저의 은모님(故 유장순 대봉도)께서 해주신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출가자는 세계 사업을 하는 것이다.’”

[2023년 8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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