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교무
이도하 교무

[원불교신문=이도하 교무] ‘수퍼수림’이라고 불리는 청각장애인 김수림의 삶에 대해 알게 됐다.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과 그것을 살아낸 과정에 큰 감동과 많은 영감을 받는다.
김수림 씨는 부모의 이혼에 의한 충격과 영양실조 등으로 6세부터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됐다. 세월이 흘러 결혼하고 어린 딸을 키우면서, 골드만삭스에도 채용됐었고, 국제기업의 도쿄지사 직원으로 <살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없다>는 책을 써 강연자로도 활동 중이다. 

그녀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직 젊고 앞으로 더 행복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녀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바로 ‘언어’였다. 그녀에게 언어는 일종의 무기였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멀티링구얼(Multilingual)이라고 하고, 다중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폴리글롯(Polyglot)이라고 한다. 그녀는 폴리글롯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할 수 있었고, 엄마와 함께 일본에서 살기 위해 일본어를 배웠다. 취직을 위해서 영어를 배웠고, 스페인어는 사람들이 좋아서 배웠다. 고도의 청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4개 언어를 구사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텐데, 청각장애를 가진 그녀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했을 것이다.
 

그녀는 상대방의 입술과 표정을 보고 언어를 받아들이고, 나의 소리를 듣는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확인하고 학습한다. 아무튼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을 즐겁게 해내고 있다. 그녀에게 찾아온 몇 번의 깊은 우울증이 있었고, 수 없이 많은 절망감에도 사로잡혔을텐데, 여전히 그녀는 자신감 있고 당차다. 동시대를 사는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계속 전해지길 바란다. 

필자 역시 언어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큰 욕심을 내지는 않되, 일상에서 언어를 공부하는 게 오랜 취미 중 하나다. 인류가 오랜 세월 다양한 도전들 위에 새겨놓은 지혜와 다양한 문화들 앞에서 좀 더 깊게 공감하고 제대로 존중하는 방식은 바로 그 문화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새로운 언어를 익히고 습득하는 과정은 어쩌면 그 자체로 평상심, 선심(禪心)에 가깝다고 본다. 또는 선심의 상태에서 가장 잘 습득할 수 있다. 

외국어 습득이론을 정립한 스티븐 크라센은 “‘낮은 불안 환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인풋을 받을 때’ 언어학습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말에서 ‘낮은 불안환경’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불안은 없앨 수도 없고 없앨 필요도 없다. 오히려 불안을 이해하고 불안을 사랑하게 되면 삶을 총체적으로 수용하며 즐길 수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023년 8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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