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교무
이도하 교무

[원불교신문=이도하 교무] 언어교육계 최고의 권위자라 손꼽히는 스티븐 크라센이 제기한 외국어 학습의 원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낮은 불안환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인풋을 받는 것’이다. 오래전 주장이지만, 이는 여전히 외국어 교육에서 자주 회자된다. 

스티븐 크라센은 Motivation(동기부여), Self-Esteem(자존감), Anxiety(낮은 불안감, 불안환경)의 세 가지 요소를 중요하게 언급한다. 1~2번은 긍정 요소지만, 3번은 부정적 요소다. 이중 낮은 불안감이 중요한데, ‘이론적으로 불안감이 제로(0)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언어학습의 조건’이라고 그는 말한다.

‘낮은 불안감’은 비단 언어학습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안에 대해서는 많은 철학적, 종교적 접근방법과 해석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점점 사람들은 예전보다 불안해하고, 갈수록 점점 더 불안감이 증폭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불안’을 일종의 ‘삶의 필수적인 자동 항법장치의 일부’라고 본다. 불안감은 수시로 일상에 엄습해 온다. 하지만 그 불안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 사소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거나 너무 커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인 경우가 많다. 그런 것에 대해 ‘내가 이런 것에 불안해하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나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든지, 뭔가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한다든지, 또는 나의 정체성이나 목표 등으로부터 벗어난다든지 등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불안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는 중요하게 봐야 한다. 그 어떤 경우라도 ‘불안’이라는 감정이 내게 인지될 때는 그 감정에 대해서 직면하고,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거나 최소한 편안해지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낮은 불안환경’이 외국어 학습의 핵심적 원칙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외국어 학습 자체가 일상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그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거나, 협소한 관점을 키우기도 한다. 대개 외국어 학습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하지만, 외국어를 학습하는 과정 그 자체는 이미 내 안에서 문화적 융합을 만들어낸다. 

이 시대의 키워드를 ‘융합’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실제로 내 안에 융합이 일어나서 융합 지성에 이르지 않고는 개인 간의 융합, 분야 간 융합을 통해 얻는 집단지성의 힘을 기대하기 어렵다. 융합은 메타버스와 AI·IA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통번역 기술이 거의 완벽하게 다른 언어권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시대가 되더라도, 여전히 남는 가치가 될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023년 8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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