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11년(1926), 서울에 원불교를 설립하다

서울교당 초대 교무 송도성과 교도들, 원기11년(1926)
서울교당 초대 교무 송도성과 교도들, 원기11년(1926)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9(1924) 처음 상경(上京)해 경복궁 앞 당주동에 경성임시출장소를 정하고 한 달여간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창덕궁 인근 가회동(嘉會洞)에 살고 있던 31세의 이동진화(李東震華)가 박사시화의 안내로 찾아와 귀의했다.

원기11(1926) 여름까지 경성지역 회원 10여 명은 소태산 대종사가 상경하면 이동진화의 창신동 수양처와 계동(桂洞) 이공주(李共珠)의 집에서 법문을 받들고, 몇몇은 총부 동(하선(夏禪)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경성과 총부는 거리가 멀고 소태산 대종사를 모실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경성지역 회원 10여 명이 경성출장소 설립을 발기했다. 이동진화가 창신동 자신의 수양처를 희사하기로 한 뒤 유지비 담당·출장소 관리·식당 담당을 자원하는 회원이 생기자 경성지역 회원들은 총부에 교무 파견을 요청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20세의 청년 송도성을 경성출장소 초대 교무로 파견했다. 경성출장소는 총부가 생기기 전 경성임시출장소로 시작된 공식적인 첫 번째 출장소라는 점과 한 나라의 수도에 설치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성출장소는 원기18(1933) 돈암동으로 신축 이전하며 매도했다가, 원기100(2015) 서울교당이 매입하고 수리해 법당 등을 조성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