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12년(1927), 영광 신흥에 원불교를 설립하다

원기5년(1920) 신흥에 설립한 묘량수신조합 작업실
원기5년(1920) 신흥에 설립한 묘량수신조합 작업실

원기2(1917)에 설립된 저축조합은 원기4(1919) 초겨울 소태산 대종사의 변산 입산으로 인해 발전적 해체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의 법을 신봉한 이동안은 고향인 영광군 묘량면 신천리 신흥에서 이완철 등 10여 명과 함께 공부 비용을 장만할 목적으로 묘량수신조합을 조직했다. 길룡리 기성조합의 정신을 이어 근검저축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신흥마을에 설립된 묘량수신조합의 조합원 전부는 소태산 대종사의 제자가 됐다. 그리고 1920년부터 26년까지 7년간 조합의 총자산을 11백여 원까지 모았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불법연구회에 의연했고, 7백여 원은 모든 회원에게 분배해 저축하도록 했다. 묘량수신조합은 저축사업과 함께 마음공부와 공익정신을 배양하는 등 도덕운동도 전개했다.

이러한 운동을 계기로 원기12(1927) 신흥마을에 회관(교당)이 건축되고 신흥출장소가 설치됐다. 모든 조합원이 입교와 동시에 조합의 전 재산을 교산에 편입했고, 한동안 영산지부에서 교화를 담당해 출장 지도를 했다. 이후 묘량수신조합은 신흥출장소로 승격됐다. 신흥출장소의 교화는 교육열을 이끌었으며, 신흥마을을 중심으로 수십여 명의 전무출신이 배출돼 초창기 교단 각 분야 창립의 초석이 됐다.

자료제공=서문 성 교무(효자교당), 전북교구

원기21년(1936)에 신축한 신흥교당 대각전
원기21년(1936)에 신축한 신흥교당 대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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