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대개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하고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하는 연고이니 … 그대들은 … 서로 사귀는 사이에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게 할지언정 그 인연이 낮은 인연으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할지어다.” 

〈대종경〉 인도품 16장 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이 경구는 며칠 전 지평선학교에 처음 출근하던 날 새벽 〈원불교 전서〉를 펼쳤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구절이었습니다. 제게는 상호 은혜의 관계를 깊이 자각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와 닿았습니다. 

저는 지평선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교직원들과 학생들, 학부모를 비롯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떤 인연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든 그 인연이 낮은 인연이 아니라 좋은 인연이 되어 서로에게 복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잠시 도종환 시인의‘담쟁이’라는  유명한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라는 시는 사람을 매우 담담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는 어느 인권운동가의 외침도 떠오릅니다. 

함께 가는 길은 걷기 힘든 좁은 길일 때가 많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가는 공동체의 희망을 놓을 수 없습니다. 앞을 가로막는 어쩔 수 없는 벽마저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말없이 오르고, 끝내 잎 수천개와 더불어 넘고야 마는 담쟁이 넝쿨의 잎 하나 하나가 바로 우리 자신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역〉에 궁즉통(窮卽通) 궁리하면 통하고(또는 곤란해지면 소통해야 한다고도 해석), 통즉변(通卽變) 소통하면 변화하고, 변즉구(變卽久) 변하면 오래 지속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지평선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함께 궁리하고 소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는 저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지평선 공동체 식구들의 마음과 노력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담쟁이 넝쿨처럼 손잡고 우리 앞에 놓인 벽을 넘어 다같이 새로운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기를 두 손 모아 요청합니다.      

대안교육은 특별한 교육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배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평범한 교육입니다. 지평선학교의 학교이념에도 나와 있듯이 원불교에서 말하는 ‘능심능사(能心能事)의 마음자력(自力)과 학습자력’을 키우는 교육입니다. 

그 길 위에 지금 여러분이 서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손잡고 걸어갈 지평선의 다양한 친구와 선배님과 선생님들이 곁에 있습니다. 성장의 고통과 소수라는 불안감에, 그리고 나와 다른 존재들과의 단체 생활에서 오는 고단함과 부대낌이 만만치 않을지라도 얼마든지 견뎌내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지평선을 선택했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을 믿고, 그 선택을 믿어야 할 책임이 있기’때문입니다.

대안교육 특성화 학교라는 모호한 정체성은 자칫 고유의 색깔을 잃고 표류하게 만들기 십상입니다. 인가받은 대안학교로서의 제도적 안정이라는 토대 위에서 교육의 본질과 씨름하면서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견지하는 열정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대안적 가치가 무엇인지, 지속가능한 삶의 근본요소가 무엇인지, 교육전환을 위한 인식의 틀을 깊이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지난 날 지평선이 겪었던 갈등과 현 대안교육계의 위기는 그 필요성을 더욱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절실합니다. 또한 지평선 교육이 잘해온 것을 계승하고, 미래교육의 핵심을 고려할 때 첫째 마음공부, 둘째 공동체교육, 셋째 생태전환교육, 넷째 도서관 중심의 인문학 교육으로 지향점이 모아집니다. 이를 발전적으로 추동하기 위한 가칭 ‘지평선 교육과정위원회’를 설치하여 교사를 중심으로 학부모와 학생이 참여하는 논의구조를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자기연찬을 통한 공동의 노력으로 교육의 구체적 실천 영역을 더불어 모색하는 가슴뛰는 출발점이 바로 오늘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비노바 바베는“교육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모든 교직원과 이사회, 후원자, 지역인사, 학생, 학부모님들의 피땀어린 애정과 헌신으로 지평선이 지금까지 이룬 빛나는 교육 전통 위에 새로운 미래를 향해 일보 전진하는 여울목에서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물처럼 흘러가면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의 목표’를 정신개벽의 성자를 교육적 인간상으로 추구하는 지평선에서 온전히 실현하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모든 인연이 복이라 했습니다. 지평선에서의 귀한 인연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동료를 존중하며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급적 지평선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분의 삶에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시면 좋겠습니다.‘따뜻함과 소속감,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빼면 나머지는 다 거품입니다’. 서로의 삶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정성껏 은혜롭게 돕다 보면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우러진 이 곳 지평선이 맑고 밝고 훈훈한 지상 낙원이 될 것입니다.

/지평선중·고등학교

[2024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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