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준 교무

[원불교신문=서양준 교무] 군대에서 막 제대했을 때 몸 상태도 좋고 도전정신도 충만했던 나는 뭔가를 도전하고 싶었다. 그랬던 나에게 찾아온 도전의 이름은 마라톤이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함께 마라톤에 등록하게 됐고, 나름 군대에서 오래달리기를 하던 경험에 의존하여 당돌하게 출발선 앞에 설 수 있었다.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은 무리겠지만 어떻게든 완주는 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태우며 마라톤을 시작했다.

세상을 너무 겁없이 바라본 애송이의 말로처럼 출발점의 힘찬 발걸음은 애석하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체력은 쉽게 떨어졌고 하나둘씩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앞서 지나갈 때마다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42.195㎞라는 거리는 왜 그리도 먼 것인지.

기원전 490년에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승리를 알리기 위해 달렸던 휘디피데스가 목적지에 도달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체득하게 됐다.

이런 온갖 상념들이 가득한 가운데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거리 표지판이었다. 현재 몇 ㎞까지 달렸는지 표시되는 표지판이 보일 때마다 '이제 겨우 5㎞밖에 못 왔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잡념을 떨쳐내며 꾹 참고 달리고 또 달렸는데 아무리 달려도 다음 6㎞표지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도 나오지 않아서 5㎞표지판 다음은 10㎞표지판이겠거니 했으나, 이게 웬걸. 다음으로 나를 반긴 것은 10㎞가 아니고 결국 6㎞표지판이었다.

결국 표지판의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마라톤이 끝났고, 지인과 다시 합류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물었다. 도대체 그 표지판은 왜 있는 것인지 묻자, 그건 잘 달리는 사람들이 페이스 조절을 위해서 보는 것이지 나와 같은 초보자는 그냥 한 발 더 내딛는 것만 생각하고 달려야 한다고 대답해줬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비결은 내가 달린 거리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한 발씩 내딛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 학교는 시험기간을 맞이했다. 그동안 배웠던 것을 다시 새기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기간이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자기 내면이 아니라 외면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학교 안에서 상대평가로 이뤄지는 내신 경쟁 체계에서는 그 증상이 더욱 심하다.

내가 무엇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는가보다 내가 몇 명보다 잘하는가를 평가하는 시스템에서 같이 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친구보단 경쟁자에 가깝다. 그 결과 친구들이 몇 시까지 공부하는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시험기간에 공부했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대종사는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그 힘이 세다 하겠으나, 자기를 이기는 것은 그 힘이 더하다 하리니, 자기를 능히 이기는 사람은 천하 사람이라도 능히 이길 힘이 생기나니라"(〈대종경〉 요훈품15장)라고 법문했다. 시험기간이면 늘 아이들에게 해주는 법문이다.

초보 마라토너였던 내가 표지판에 집착했듯, 외부의 조건이나 주변의 환경에 집착하기 쉬운 학교에서 참다운 자신을 보는 것이 참다운 실력임을 강조해본다.

/원광여자중학교

[2019년 10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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