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명 교무

[원불교신문=윤관명 교무] 지난 18일 인천의 한 마트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우유와 사과 1만원어치를 훔치다가 적발됐다. 30대 가장은 수개월 전까지 택시기사를 하다가 당뇨 등 지병으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됐고, 어머니와 두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그는 굶주림에 그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다. 결국 마트 측에서는 처벌 의사를 철회하고 경찰은 두 부자에게 국밥을 대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본 60대 남성은 식당으로 찾아와 20만원이 든 봉투를 말없이 건네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마트엔 도움을 주고자 생필품을 전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세상이 점점 각박하고 인정이 메말라 간다고 하지만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법과 정의가 있어 죄를 지었다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30대 가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까? 그것은 우리 안에 따뜻한 연민의 정이 흐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하나의 생명으로서 상대의 심정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질 때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사회에 지켜야 할 법과 정의가 분명하지만, 때때로 인간적 연민을 우선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때다. 사회적 약자가 충분한 의식주를 가지지 못하고 어려움에 있다면 사회는 공동체의 일원을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민생을 위해 법을 처리해야 할 정치권은 당리당략을 위해 민생을 인질 삼아 거리를 배회하고, 진실을 밝혀야 할 언론은 가짜뉴스와 편파뉴스로 스스로 신뢰를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한 수많은 깃발들은 정의와 불의를 판단할 능력을 상실한 채 거대한 소음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이같은 혼돈의 현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되새겨 보아야 한다. 종교의 길과 종교인의 길은 무엇이며,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과 책임을 가져야 하는가?

13일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는 원기104년 출가서원식이 있었다. 32명의 서원자는 수많은 축하를 받으며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곧 “시방세계 육도사생의 전 생명이 나의 생명이요 전체 행복이 나의 행복임을 알라.” ‘전무출신의 도’ 1조에 담겨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과 내가 둘 아님을 알고,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통 세상에 바칠 것을 서원하는 것이 곧 ‘전무출신’의 정신이다.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배고픈 사람의 심경을 헤아리고, 상처받은 이의 고통를 함께 느끼는 따뜻한 연민이 바로 출가자의 마음가짐이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생명과 내가 이어져 있음을 알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 32명의 출가자들이 더욱 소중한 이유다. ‘전무출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의 앞길에 항상 사은의 크신 은혜와 위력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진흙 속에서 고고하게 피는 연꽃처럼 혼탁한 세상 속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할 것이라 희망한다. 

/동창원교당

[2019년 12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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