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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으로 읽는 정전 18. 일원상과 신앙
일원상으로 읽는 정전 18. 일원상과 신앙
  • 방길튼 교무
  • 승인 2020.03.20
  • 호수 19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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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길튼 교무
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의 신앙은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는 것”(대종경 교의품 4장)이라 명시한다. 즉 일원상의 신앙은 일원상의 진리에 귀의해 일원상으로 복락을 구하는 것이다. 

주산 종사는 ‘신앙과 수양’이란 논설에서 “두렷하고 텅 빈 이 일원의 속에는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어느 것 하나 포함되지 않음이 없나니 그야말로 속으로 들어와도 안이 없고 겉으로 나가도 밖이 없는 우리의 자성이며 우주의 본체입니다”(회보 34호)라고 일갈한다. 

이처럼 일원상의 진리는 두렷하고 텅 빈 자리로서, 안팎의 분별과 마음과 우주의 분별이 없는 원융한 한 자리로, 천지가 드러나고 일월이 출몰하고 사시가 순환하고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가 두렷한 텅 빈 자리이다. 지금 잡념이 일어날 때 일어나는 잡념이 두렷하게 드러나고 그렇게 드러난 자리가 본래 텅 빈 자리임을 확인해 이렇게 두렷하고 텅 빈 일원상에 귀의(歸依)하자는 것이다.

즉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텅 빈 자리에서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는 공적영지의 광명에 귀의하는 것이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부동한 자리에서 생사 변화하고 흥망성쇠로 변태하는 현상이 두렷한 공적영지의 광명에 귀의하는 것이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청정한 자리에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는 공적영지의 광명에 귀의하는 것이며, 언어명상이 돈공한 고요한 자리에서 언어명상이 완연한 공적영지의 광명에 귀의하는 것이며,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시방삼계가 장중의 한 구슬같이 드러나는 자리에 귀의하는 것이다. 또한 그 없는 진공자리에서 그 있는 것이 묘하게 작용하는 진공묘유의 조화에 귀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공적영지의 광명과 진공묘유의 조화에 귀의하는 것이 곧 일원상을 믿는 일원상의 신앙이다.

소태산은 “일원을 해석하면 곧 사은이요, 사은을 또 분석하면 곧 삼연한 우주의 실재로서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불성(佛性) 아님이 없다”(회보 46호)라고 했다.

대종경 교의품 4장의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의 부처는 깨어있는 마음자리인 불성에서 드러나는 천지만물 허공법계로, 분별된 외재의 대상이 아니라 청정한 성품 자리에서 현현되는 존재이다. 즉 삼라만상의 처처가 다 깨어있는 마음자리인 일원상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부처 아님이 없으며, 진공묘유의 조화가 우주만유를 통해서 죄복의 근본처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우주만유는 경외요 존엄 자체이므로 천만사물에 응할 때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대하자는 것이며, 천만사물의 당처에 직접 불공하기를 힘써서 현실적으로 복락을 장만하자는 것이다. (대종경 교의품 4장) 

이와 같이 공적영지의 광명이요 진공묘유의 조화인 청정 일원상에 귀의하여 사실적으로 죄주고 복주는 우주만유 전체에서 복락을 구하는 것이 일원상의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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