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은 교무

[원불교신문=임진은 교무] 후배 교무와 의논할 일이 있어 카페에 갔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메뉴를 보는데, 처음 보는 메뉴들이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과 안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주문을 받는 매장 직원에게 “000 맛있어요?”라고 물었다. 낯선 메뉴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듣고는, 결국 늘 마시던 커피로 주문을 마쳤다. 2층으로 올라가는데 뒤따라오던 후배 교무가 웃으며 말했다. “교무님은 뭘 고를지 잘 모르겠으면 직원에게 이거 맛있냐고 묻는 거 아세요? 그러면 그 직원이 뭐라고 답을 하겠어요” 그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맞아, 내가 그랬지.’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내가 정말 그랬었다. “어떤 직원은 솔직하게 말해주기도 해요.” 궁색한 변명을 하면서, 순간 생각되는 게 있었다. 가끔 그렇게 원하는 정보를 얻었던 만족감 때문에 그 습관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구나!

스키너(Skinner)라는 학자가 제시한 학습이론 중에 ‘강화’라는 개념이 있다. 강화는 행동의 강도와 빈도를 증가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행동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하도록 유도하는 어떤 자극이나 사건을 강화물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선생님의 칭찬이나 놀이시간, 선물, 스티커, 높은 점수와 같은 강화물을 얻기 위해 좀 더 열심히 그리고 좀 더 오래 공부하도록 강화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행동을 한 뒤에 나타나는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면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강화물로는 음식, 물, 집과 같이 생존에 필요한 1차 강화물 뿐만 아니라, 돈과 같이 하나 이상의 1차 강화물과 연합되어서 만들어지는 일반화된 강화물도 그 효과가 매우 강력하다. 이 외에도, 성공감이나 안도감 같은 내적 느낌, 관심, 인정, 칭찬, 긍정적 피드백 등도 좋은 강화물이 된다. 

이런 강화물들이 가져오는 강화 효과는 단지 학교나 가정교육 같은 교육 장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 방식과 습관에 깊이 얽혀 있다. 내가 음식이나 커피 하나를 고를 때도, 자칫 직원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질문 습관이 가끔의 만족감에 의해서 지속되는 것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행동 방식과 습관들 중에는 이렇게 나도 모르는 가운데 무엇인가가 강화물로서 힘을 보태주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꾸만 갈등을 만드는 어떤 거칠고 뾰족한 행동이나 태도조차 쉽게 변하지 않는 것 역시 이런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설사 그러한 문제점을 본인이 알고 있고 그래서 변화를 원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 행동이나 태도로 인해서 미묘하게 어떤 ‘이득’을 얻고 있다면, 안타깝게도 변화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강화물이 간헐적이고 불규칙적으로 주어진다면, 그 행동은 더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언제 강화물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행동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쉬운 예로, 언제 고기가 잡힐지 몰라서 자리를 지키게 되는 낚시가 그렇다. 아마도 우리는 현실의 많은 상황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불규칙적인 강화물들을 얻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성격이나 습관과 관련된 강화는 낚시와 같은 단순한 사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만큼 변화가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그 행동이나 태도로 인해서 얻고 있는 이득, 즉 강화물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강화물이 계속 제공되지 않는다면, 그 행동은 반드시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광대학교

[2020년 4월 1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