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철 교무

[원불교신문=조경철 교무]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지만,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알게 해 준다. 우리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왔으며,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대 변혁기에 접어들고 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실행으로 유래가 없었던 장기간의 법회 휴회도 생활 방역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소태산 대종사가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성스러운 대각개교절을 경축하고, 우리 원불교인들의 공동생일을 자축할 수 있게 됐음에 한없이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다. 

장기간의 법회 휴회로 인해 재가출가 교도들이 모두 교당에서, 가정에서 개인적 신앙생활을 이어 오면서 법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는 그동안 일요일 오전이면 당연한 일과처럼 교당에 와서 법회에 참석하고, 이를 통해 원불교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듯한 생각을 가져 왔다.

관성처럼 참석하던 법회에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몰라 혼돈 속에 빠져든 것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법회 휴회가 장기화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영상법회나 설교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회보나 소식지를 우편으로 발송하는 등 당면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다양한 형태의 법회를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 법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봤다.

법회의 본질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신앙의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살펴봐야 한다. 어느 마을에 엄청난 비가 내려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있을 때, 교회에 고립된 목사를 구조하기 위해 이웃과 소방대원과 경찰이 찾아왔다. 목사는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며 구조의 손길을 외면했고, 결국 죽음을 당한 후 하나님에게 “왜 나를 구원하지 않았느냐”라며 원망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내가 너를 구원하기 위해 이웃을 보내고, 소방관을 보내고, 경찰관을 보냈으나 넌 마지막까지 내 구원을 손길을 거부했기에 결국 죽게 된 것”이라 말했다.

이것은 신앙의 대상과 나를 분리해서 보는 이분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우주의 진리 따로, 내 삶 따로 겉도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불단에 모신 일원상은 우주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그 자체가 진리는 아닌 것이며, 법당에 모셔 놓은 대종사 진영 역시, 우주의 진리를 깨달으시고 우리에게 전해 주신 그 수많은 법문들을 다 펼쳐 놓을 수 없으니 대종사 진영을 상징적으로 모시고 경배하는 것이지 대종사 진영이 대종사의 실체는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우주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원상을 그저 불단에 모셔놓고 일주일에 한 번 교당에 와서 참배하고 대종사 진영에 경배를 올리는 것만을 법회로 생각한다면 그 법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죽은 법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법회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신앙하고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학습하기 위해서 반드시 정례법회는 필요하다. 그러나 법회의 본질은 법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회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것이며 그 얻은 것이 일상에서 어떤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교당에서는 훌륭한 교도인데 일상에서는 엉망이라면 이런 교도를 진정한 원불교인이라 할 수 있는가?

법회의 본질은 교당 안에서만 통용되는 소극적 활동이 아니라 나의 소소한 일상 모두가 법회임을 자각해 일원상 진리와 대종사 가르침을 실행해 가는 것이 참 법회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생활 속 법회를 잘 해내기 위해서 정례법회가 필요한 것이고, 일원상 진리는 따로 있고 내 삶의 이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원상 진리와 내 삶의 이치가 함께 돌아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2020년 4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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