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쓰임에 있는 것

조경철 교무
조경철 교무

[원불교신문=조경철 교무] 법회를 마친 일요일 오후는 교당에 근무하는 교역자에게는 가장 부담 없고 마음이 한가해지는 시간입니다. 시끌벅적했던 법회가 끝나고 교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고요한 교당의 살림채 한 켠에 다림질 판을 펼쳐놓고 새하얀 법복을 올려놓았습니다. 

칼칼한 풀을 머금은 법복은 빨래의 흔적을 알리듯 온통 구겨져 있는 모양새입니다. 묵직한 다리미의 열판이 홍해가 갈라지듯 법복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면 잘 닦인 고속도로처럼 반듯해 지는 것이 마치 일상에서의 경계와 싸우다 지쳐 꾸깃꾸깃 구겨진 내 마음을 반듯하게 닦아주는 기분이 듭니다. 

‘법복’은 교역자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 중의 하나입니다. 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특별한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법복을 입는 순간, 마치 아이언 맨이 슈트를 입고 나면 엄청난 파워와 대단한 능력을 갖게 되듯이 교화자로서의 권위와 막중한 사명감, 그리고 엄중한 책임감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법복을 입는 순간 한 개인이 아니라 대종사의 전법사도요 종법사의 대리인으로서 대각전에서 가장 높은 강단에 올라 대종사의 포부와 경륜을 전하는 사자후를 토해 내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앉아 그늘진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품어 안는 은혜 나눔의 전달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법복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고 개인의 능력을 넘어선 교화자로서의 거룩하고 신성한 삶을 살아가고자 몸부림치곤 합니다. 제가 선택했고 진리로부터 위임받은 교역자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법복을 대하는 제마음을 언제나 온전하게 추스립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는 TV에서 노랑 근무복을 입은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옷의 가격은 잘 모르겠지만 그 옷에는 국민이 부여한 공직자로서의 막중한 사명과 엄중한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코로나 19 방역의 모범국가로 세계적 찬사를 받고,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며, 비교적 성공적으로 코로나 19 사태를 극복해 내고 있는 것도 공직자들이 노랑 근무복에 담긴 사명과 책임을 최선을 다해 수행해 낸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격무에 시달려 초췌한 모습으로 브리핑 현장에 나타난 공직자가 입은 그 노랑 근무복은 그 어느 명품보다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멋쟁이라고 힘찬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살아가며 본인이 선택하고, 또한 사회가 부여한 사명과 책임이 담긴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그 옷에 담긴 뜻을 마음 깊이 새겨 그 역할을 다 할 때 우리 사회는 함께 잘 살 수 있는 상생의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우리 사회는 본인이 입고 있는 그 옷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개인적 일탈로 인해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에 피해를 주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의 의미와 가치를 내동댕이치고 남의 옷을 부러워하거나 탐내는 욕심으로 그릇된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 옷이 얼마짜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게 부여된 그 옷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행복과 함께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임을 알아서 남녀노소·빈부·높고 낮음을 떠나 내가 앉은 자리고 꽃자리이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가장 가치 있는 옷임을 순간순간 알고, 느끼고 체득하여 실행해 가는 나의 삶을 살아가기를 서원합니다. 주름진 새하얀 법복 한가운데로 다리미는 힘차게 전진합니다.

/군산교당

[2020년 6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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