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원기13년 3월, 제1대 제1회 기념일 풍경이다. 정기총회를 겸한 이 날,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회상 창립 이후, 12년의 사업 보고와 성적 발표를 듣고 어떤 감상이 들었는지. 여러 제자의 답을 일일이 경청한 대종사는 제자들의 감상이 적절하다 수긍하고 본인이 꼭 전하고 싶었던 핵심을 짚어준다. 

당시 그 자리에는 대종사와 일찍 인연을 맺어 여러 해 함께 한 사람도 있고, 함께 한 시간이 몇 해 안 되는 사람도 있어서 자연 선진(先進)과 후진(後進)의 구별이 있었다. 대종사는 선진과 후진 사이에 새로운 깨침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치를 설명한다. 

후진들은 회상 창립에 큰 애를 쓰지 않았지만, 미리 만든 기관과 제정한 법으로 비교적 편안히 공부했다. 이는 선진의 노력 덕분이라, 마땅히 감사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모든 선진을 다 업어서라도 받들어야 한다. 

반면, 설립 초기부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정성을 다해 모든 법을 세우고 여러 가지 기관을 만들어 놓은 선진은, 후진들이 시설을 활용하고 교법을 숭상하며 기관을 운영하지 않았다면, 본인들이 고생한 가치가 드러나지도 않을 것이고 기관과 교법도 세상에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선진 역시 후진에게 감사하고 후진을 다 업어서라도 영접해야 한다.

선·후진의 도(道), 서로의 공덕에 깊이 감사하고 서로의 존재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당부로 이해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영원한 선·후진은 없다. 선·후진은 상대적인 관계이다. 두 세대의 경계인이 되기도 한다. 선진과 후진의 경계인,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경계인, 근대화 시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경계인 등 다양한 영역의 경계인으로 우리는 다중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경계인은 두 세계에 모두 속하면서 동시에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두 세계를 낯설게 보고 새로움을 발견하며,  사람을 연결할 기회를 얻는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자가 아니라 배우고, 잊고, 새로 배울 줄 모르는 자를 말한다’라고 했다. 끊임없이 학습하며 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간다는 것은 매우 불안하고 외로운 일이다. 

연결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시대적 함의를 기억하자. 먼저 실천하고 배우는 선배가 또 다른 실천을 하는 후배들이 성장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서로 다른 세계에서 배우더라도 각자의 세계를 연결해서 놀라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진정한 연결이다. 시니어와 밀레니얼 세대의 경계인, 누구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변화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연결하자. 인정하고 연결하면 출발점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대종사와 문답하던 제자들이 매우 부럽고 그분들을 통해 대종사와 연결되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기꺼이 아니 기쁘게 연결하기를 서원한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4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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