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류시화의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의 마지막 구절이다. 시인이기에 가능한 따뜻한 상상력은 세상의 말을 깊이 있게 한다. 

‘세월의 사전적 의미는 흘러가는 시간이다. 6년 전 그날 이후 이  단어는 시간이 흘러도 우리에게는 늘 먹먹한 상처이다. ‘가만히’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서늘함도 그날 이후였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정형화된 사전이 담아내지 못하는, 기억과 경험이 만들어낸 자신만의 사전이 하나씩 있는 듯하다.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는 사전은 중고등학교 시절 필수품이었기에, 국어사전과 영한사전은 단골 입학선물이었다.

요즘은 종이에서 웹으로 사전의 기능이 많이 옮겨졌고 웹의 언어에 맞게 체제와 형식도 바뀌고 종이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던 기능들이 새로 만들어져 하나의 단어를 검색하면 연관 내용까지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다. 형식이 달라져도 나는 여전히 사물의 이름을 접하면 이름의 근원을 파악해 보는 사전 찾기를 즐긴다.

이름을 지은 까닭에는 그 사물이 존재하게 된 원인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단어의 어원과 유래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나만의 새로운 해석을 담아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어보면 평소 대화습관은 물론 말 그릇의 크기를 느끼게 된다. ‘말 그릇’ 김윤나 작가는 사람마다 말을 담는 그릇이 하나씩 있고, 말 그릇의 크기는 마음 그릇의 크기와 비례해서 말을 담아내는 그릇이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인간관계 역시 더 깊어진다고 한다. 참 공감된다. 

정산종사는 불의한 말로 사람의 천륜을 끊는 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파괴하는 큰 죄가 되며, 고의로나 또는 무의식중일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좋지 못한 말을 함부로 전하여 서로 원망과 원수가 나게 한다면 그 죄가 심히 큰 것이니, 방편이나 사실을 막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좋은 말을 잘 연락시켜서 종래에 있던 원망과 원수라도 풀리게 하며, 옳은 일에는 상대가 늘 마음이 나게 하고 그 잘한 일을 추진해 주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크게 키우는 참다운 예(禮)가 되고 좋은 공덕이 된다고 했다. 

얼음보다 차가운 원수를 만들기도 하고 얼어붙은 관계를 녹일 수도 있다. 큰 죄를 지을 수도, 공덕을 쌓을 수도 있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도 감싸 안아 줄 수도 있기에 나와 너, 우리와 세상을 연결하는 말, 사람 냄새나는 단어로 가득한 나만의 사전을 만들고 싶다. 마음을 돋보기라고 정의한 1학년 학생이 기억난다. 예쁜 것도 사랑스러운 것도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듯 마음도 그렇기 때문이란다. 여러분이 만일 사전을 만들었다면?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5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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