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일원상’장에서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또는 ‘일원은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라 정의한다. 즉 일원=일원상=일원상의 진리이며, 우주만유=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으로, 사은은 일원상 자리에서 드러나는 우주만유인 것이다. 

대종경 교의품 9장에서 “천지·부모·동포가 다 법신불의 화신이요 법률도 또한 법신불이 주신 바”라고 말한다. 즉 사은은 법신불 일원상의 화신이요 주신 바로, 사은은 일원상의 발현이요 조화인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입정돈망에서 출정하여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의 구절을 듣고 즉각적으로 천지은을 확인한다. 언어도단의 입정처인 일원의 자리에서 천지의 도와 덕을 온전하게 드러낸 것이다. 

또한 정산종사법설에서 “이 사은은 어디로부터 비롯하였는가. 그것은 바로 일원의 진리로부터 근원하였나니 일원의 내력을 말하자면 사은이요, 사은을 간략히 말하면 일원이라. 비하건대 일원은 박의 뿌리와 같고 사은은 박과 같나니라”라고 설한다. 즉 일원상을 펼치면 우주만유인 천지·부모·동포·법률로 전개되고 천지·부모·동포·법률을 갈무리하면 본원인 일원상인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주만유를 은혜의 시각으로 범주화해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으로 제시한다. 범주화는 두부를 네 토막으로 자르듯이 나눈 것이 아니라, 한 자리를 네 관점으로 분류한 것으로, 사은은 소태산의 대각 체험이다. 이 사은 각각의 범주에 다른 범주가 서로 녹아 있는 것으로, 우주만유를 천지은의 시각으로 보면 우주만유 전체가 천지요, 부모은의 시각으로 보면 우주만유 전체가 부모이듯이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은 원융한 한 자리이면서 각각의 고유한 범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고로 사은은 일원상 한 자리의 네 범주의 발현인 것이다. 이러한 사은은 중생의 눈에 펼쳐지는 우주만유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생의 관점으로 드러나는 우주만유가 온전한 사은은 아닌 것이다. 청정 일원상에 근원할 때 우주만유가 온전한 사은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사은은 청정 일원상 자리에서 드러나는 천지·부모·동포·법률로, 사은의 은(恩)은 일원상의 나타남이요 작용으로, 즉 ‘일원상인 사은’으로 ‘일원상 사은’이다. 그러므로 청정 일원상 자리에서 없어서는 살지 못할 천지의 도가 드러나며, 무자력자 보호의 도인 부모의 실상이 드러나며, 또한 청정 일원상 자리에서 자리이타의 도인 동포의 실상이 드러나며,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인 법률의 실상이 발현되는 것이다.

한 편만 보아서 자기가 바라고 구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다 쓸데없다는 편협하고 우치한 소견을 버리고 편착 없는 광활한 안목으로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낮은 것은 낮은 대로 경우에 따라 그곳에 마땅하게만 이용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이용물이요 옹호기관인 은혜라는 것이다. 즉 착없는 일원상 자리에서 드러나는 우주만유가 사은인 것이다.(대종경 불지품 22장)

/나주교당

[2020년 4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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