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사요는 일원상에 근원한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로 일원상의 사요이다. 왜냐면 사요는 ‘교리도’에서 일원상에 근원한 인과보응의 신앙문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원상에 근원치 않는 사요는 진정한 사요가 아닌 것이다. 

사요의 첫째 조목인 ‘자력양성’에 있어 자력의 근원처는 일원상이다.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이나 물질에 종속되어 의뢰하는 타력생활이 아니라 본래 의존할 것이 없는 상독로(常獨露)의 일원상 성품 자리가 곧 온전한 자력처인 것이다. 즉 짝할 것이 없는 일원상 이 자리에 근원해야 온전한 자력을 양성할 수 있고 남녀노소 선악귀천 각각의 권리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지자본위’도 일원상에 근원하고 있다. 불합리한 차별제도에 끌리지 않는 일원상 자리가 드러나지 않고서는 지우를 구별해 지자를 본위(本位)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지자인데 나이가 어리다고 생김새가 못났다고 본위하지 않게 된다. 텅 비어 고요한 일원상에 바탕해 지우를 근본적으로 차별하지 않되 구하는데 있어 지자를 본위해 선도자로 삼는 것이다. 

셋째, ‘타자녀 교육’에 있어 자타의 국한을 벗어난 자리가 일원상 자리로, 자타의 국한이 없기에 자타가 둘이 아닌 자리에서 타자녀 교육을 하는 것이다. 자타가 둘이 아닌 일원상이 드러나야 모든 후진을 두루 교육하는 타자녀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공도자 숭배’의 근원처가 일원상으로, 지공무사한 일원상 자리에 바탕해 공도자를 숭배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간격이 없는 일원상이 드러나지 않고서는 공도자 숭배와 공도 우선이 안 되며, 사사로움이 없는 공변된 자리에 근거해야 공도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요에 대해서 “자력양성 조목의 공부를 잘 하면 누구나 의뢰심과 원망심이 끊어지고 따라서 자력생활을 하게 되리니, 이는 남녀평등·인류평등을 권장하는 법이니라. 지자본위 조목의 공부를 잘 하면 우치와 무식이 감소되고 인지가 발달됨에 따지 지자가 많이 생겨나게 되리니, 이는 지식평등을 권장하는 법이니라. 타자녀교육 조목의 공부를 잘 하면 무산한 타인의 자녀라도 가르치게 되고 따라서 교육의 혜택을 받는 자가 많아지리니, 이는 교육평등을 권장하는 법이니라. 공도자숭배 조목의 공부를 잘 하면 공익심과 자선심이 생겨나고 따라서 공익기관이 불어남에 무식과 빈한인이 점퇴되리니, 이는 생활평등을 권장하는 법이니라”하시고, 종합하여 말씀하기를 “사요법을 실천함에 인류평등·지식평등·교육평등·생활평등이 실현되어 개인·개정·사회·국가가 한 걸음 나아가 전 세계 온 인류가 평화안락하게 되나니, 사요는 인간의 생활로(生活路)이니라”라고 총결한다. (이공주 수필)

이처럼 사요법은 평등 일원상 자리를 구현해 평화안락한 세계로 인도하는 인간의 생활로이므로, 정신계의 사회과학서요 인류문명의 안내서인 것이다.

/나주교당

[2020년 5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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