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은 교무

[원불교신문=임진은 교무] 우리는 몹시 속상하거나, 두렵거나, 괴로운 것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들 때, 반사적으로 이를 피하려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부모님의 심한 불화로 마음이 편치 않은 학생이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들거나, 입사시험에 실패한 절망감을 잊기 위해서 친구들과 정신없이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경험 회피’라고 하는데, 경험 회피란 신체적 감각, 감정, 생각과 같은 자신의 사적인 경험들에 있는 그대로 ‘접촉’하지 않고, 이런 경험이나 발생한 상황 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경험 회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억제인데, 위의 두 가지 예와 같이 원치 않는 감정이나 생각이 들 때 이를 즉각적으로 없애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황으로부터 도피 또는 회피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평소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드는 사람이 자신이 재미없고 비호감일 것이라는 생각에 친구들과의 모임에 가지 않는 것이다. 

나쁜 기분과 괴로움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경험 회피가 혹 유용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생각을 전환하거나,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록 회피했던 감정과 생각이 오래지 않아 더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밀치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기적인 효과보다는 단기적인 효과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경험 회피는 상당히 매력적인 방법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경험 회피던지 그것은 결국 삶의 생생하고 다채로운 측면들을 온통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리고 왜곡시키는 일이다.

또한 그렇게 회피하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에서 나도 모르게 더 단단하게 굳어지거나, 현실적인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억압한 것은 어느 때든 꿈틀거리며 나오게 되어 있으니, 내면에서 단단하게 굳어진 감정은 더 난감한 괴로움이 되어 찾아올 것이다. 나아가, 과도한 경험 회피는 게임중독이나 만성적인 무기력에 빠지는 것과 같이 그 자체가 큰 해로움을 가져오기도 한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즉 ‘기꺼이 경험하는 것’은 건강한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고통은 스스로를 위해서 진정한 의미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신호이며, 내가 중심만 잘 잡는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숨어 있는 보석과 같다. 따라서 고통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생생한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더불어, 그러한 마음과 태도는 삶의 모든 걸음을 성장으로 이끈다.

“매일 매일의 수행이 당신의 모든 감정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만나는 모든 상황에 열려 있다면, 마음의 문을 닫지 않고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면 영적인 성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 모든 스승이 가르쳤던 모든 가르침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느 책에 인용된, 티벳 승려 페마 초드론(Pema Chödrön)의 글이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찬란하다. 만약 유쾌한 순간만을 찬란하다 여긴다면, 그것은 이미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리는 일과 같다. 경험 회피가 자연스러운 것은 그만큼 기꺼이 경험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 무엇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원광대학교

[2020년 5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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