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정전에 ‘불신이라 함은 신의 반대로 믿지 아니함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결정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했다. 이 불신에 대해 대타적(對他的)인 면에서 보면 원불교의 기본을 이루는 대종사와 일원진리와 정법회상과 무상대법과 수행제도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요, 대자적(對自的)인 면에서 보면 자기 자성이 법이요 자기 마음이 부처임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불신에 있어서 가장 경계를 해야 할 것은 곧 ‘호의불신증(狐疑不信症)’이다. 대종경부촉품6장에 “…둘째는 확실히 깨치지는 못했으나 순전히 모르지도 아니하여 때때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여러 사람이 감탄하여 환영하므로 제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되어 제가 저를믿고 제 허물을 용서하며 윗 스승을 함부로 비판하며 법과 진리에 호의를 가져서 자기 뜻에 고집하는 것이니, 이 증세는 자칫하면 그 동안의 적공이 허사로 돌아가 결국 영겁 대사를 크게 그르치기 쉬우므로, 과거 불조들도 이 ‘호의불신증’을 두렵게 경계 하셨나니라”라고 했다.

결국 이 불신의 마음은 성불의 장벽이 되고 악도에 떨어지는 근본이 되며 수행정진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서 버리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비록 종교적인 면은 아닐지라도 옛 사람들은 불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① 문시진경(文始眞經)9권 구약편(九藥篇)에 “관윤자가 말하기를 ‘어리석은 사람은 믿지 않기는 쉬워도 어진 사람 믿지 않기는 어려우며, 어진사람 믿지 않기는 쉬워도 성인 믿지 않기는 어려우며, 한 성인 믿지 않기는 쉬워도 일천 성인 믿지 않기는 어려운 것이라. 무릇 일천 성인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밖으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안으로 나를 보지 못하며 위로 도를 보지 못하고 아래로 사물을 보지 못하니라.’”

② 논어·학이(論語·學而)에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돌이켜 보나니 남을 위해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않았는가? 벗을 사귐에 믿음직스럽지 않았는가? 가르침 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③ 도덕경에 “(정치가에게) 신의가 부족하면 믿지 않음이 있으리라(信不足焉 有不信焉)”

송(頌)하기를
대범인세활(大凡人世活) 무릇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소신난생(無所信難生) 믿는 바가 없으면 살기 어려우리
공로여영초(功路如楹礎) 공부하는 길에 기둥의 초석 같나니
심중입강경(心中立强勍) 마음 가운데 강하고 곧게 세울지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0년 5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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