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정전에 ‘탐욕이라 함은 모든 일을 상도에 벗어나서 과히 취함을 이름이니라’고 했다. 즉 자기가 하고자하는 것을 탐내서 구하는 것이요, 자기의 정(情)에 맞는 것을 받아드려 실증이 없는 마음이다. 또한 도(度)를 넘어 욕심이 많은 것이며, 명성과 이익을 탐내는 것이요, 세간의 색욕이나 재보(財寶) 등을 탐하는 것으로 갈애(渴愛)를 뜻하며 제고(諸苦)의 근본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탐욕이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① 貪: 탐내다, 탐하다. 바라다. 희망하다. 자초하다(自招:어떤 결과를 자기가 생기게 하다). 탐욕. ‘오욕의 경계에 염착하여 떠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대승의장2에 “애염을 탐이라 이름하니라” 구사론16에 “다른 재물을 어떻게 하고자 함이 탐이라”라고 했다. 유가론기 7상에 “탐과 더불어 애는 이름은 다르지만 몸체는 같으니라”라고 했다. ② 欲(慾): 욕심(欲心ㆍ慾心), 욕정(欲情ㆍ慾情). 탐내다. 희구(希求)한다는 뜻으로 진경(塵境)을 희구하는 것을 말한다. 구사론4에 “욕이란 희구로 짓는 바 일을 이르니라”라고 했다. 유식론 5에 “무엇을 욕이라 하는가. 소락경에 희망이 성이 되고, 근의가 업이 되니라”라고 했다.

우리 정전 ‘참회문’에서는 ‘…그러나 죄업의 근본은 탐진치(貪瞋癡)라…’했고, ‘법마상전급’에서는 ‘탐심(貪心)을 내지 말라’ 했으며, ‘솔성요론’에서는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공경심을 놓지 말고 탐한 욕심이 나거든 사자와 같이 무서워하라’고 하여 경계를 했으니 공부하는 우리들은 탐욕을 가벼이 여기거나 쉽게 알아서는 절대 안 된다.  

또한 대종경 수행품 36장에서는 “욕심은 없앨 것이 아니라 도리어 키울 것이니 작은 욕심을 큰 서원으로 돌려 키워서 마음이 거기에 전일하면 작은 욕심은 저절로 잠잘 것이요, 그러하면 저절로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된다”라고 해 욕심을 서원으로 돌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옛 문헌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① 대보적경28권에 “탐욕이 만족하지 않는 것은 바다가 흐름(강물)을 삼킴과 같아서 좇을지라도 만족하지 못하리라.” ② 법화경 ‘비유품’에 “모든 괴로움의 소인은 탐욕이 근본이 되는 것으로 만약 탐욕이 멸하면 의지할 곳이 없으리라.” ③ ‘하상공주노자도덕경 ’에 “무릇 높이기를 더하는 것은 무너지고, 부유를 탐하는 자는 근심이 이르니라”

송(頌)하기를
막탐위기리(莫貪爲己利)  자기만 위해 이익을 탐하지 말고
물욕부재풍(勿慾富財豊)  재산 풍성하길 욕심내지 말지니
기국수인정(器局隨人定)  기국은 사람 따라서 정해졌음으로 
유분불복충(踰分不腹充)  분수 넘어 배를 채우지 못하리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0년 5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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