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팔조의 진행(進行) 사조인 신·분·의·성은 일원상에 바탕한 삼학을 촉진해 진행시키는 원동력이라면, 반면에 사연(捨捐) 사조인 불신·탐욕·나·우는 삼학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요 걸림돌이다.

진행사조의 신(信)은 만사를 이루려할 때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으로, 일원상에 바탕한 삼학 수행에 대한 확신이다. 이 신심으로 삼학 수행을 촉진하면 수양력·연구력·취사력인 삼대력을 이룬다는 발심이요 결심이다. 신에는 이처럼 발원이 내포되어 있으며, 마음을 정하는 결정심은 흔들림 없는 부동한 일원상 자리에 든 것이다. 

분(忿)은 용장한 전진심으로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다. 삼학 수행을 권해 힘쓰게 하고 촉구해 가도록 하는 것이다. 권면하고 촉진하는 마음당처에 들면 그 자리는 물러설 것이 없는 일원상 자리이다. 분(忿)은 일원상에 근원한 삼학 수행에 분발해 삼대력을 나투겠다는 의지이다.

의(疑)는 일과 이치에 모르는 것을 발견해 알고자 하는 것으로,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원동력이다. 

의(疑)는 모르는 것을 발견해 알고자 하는 삼학의 탐구심으로, 모르는 것을 알고자하는 그 의심 당처에 들면 그 자리는 안다 모른다 할 것이 없는 그대로 일원상 자리이다. 
즉 의(疑)는 명명한 일원상에 기반해 대소유무의 이치에 따라 시비이해를 운전하는데 있어 모르는 것을 발견해 알아내는 원동력이다. 

성(誠)은 간단없는 마음으로,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그 목적을 달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성(誠)은 삼학 수행을 할 때 설사 실수하고 좌절한다 해도 다시 챙기고 또 챙기는, 하고 또 하는 정성심이다. 

이처럼 목적에 이르게 하는 정성 당처에 들면 그 자리가 바로 간격과 단절이 없는 여여한 일원상 자리이다. 성(誠)은 간단없는 일원상에 기반한 삼학으로 삼대력을 나투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이처럼 진행 사조인 신·분·의·성은 일원상을 표본 삼아 삼학으로 만사를 이루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또한 삼학 수행을 할 때 불신이 있으면 삼학으로 삼대력을 나투겠다는 결심 서원을 세울 수 없으며, 과히 취하는 탐욕으로 삼학은 고갈되며, 하기 싫어하는 나태로 삼학은 진행되지 못하며, 사리를 전연 알지 못해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어리석은 행위는 삼학을 무력하게 한다.

또한 불신(不信)인 줄 자각할 때 불신이 확연히 드러나며 이 자리에는 불신이 붙을 수 없는 것처럼, 탐욕(貪慾)인 줄 알아차리어 탐욕이 두렷이 드러난 자리에는 탐욕이 어찌할 수 없으며, 하기 싫어하는 나(懶)인 줄 직시할 때 나태가 선명히 드러난 자리에는 나태가 힘을 쓸 수 없으며, 우(愚)인 줄 돌아보아 자기 맘대로 하려는 우가 확연히 드러난 자리에는 우가 싹틀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불신·탐욕·나·우를 자각할 때 그 마음당처가 곧 청정 일원상 자리로, 이 자리에서 불신·탐욕·나·우를 버리고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나주교당

[2020년 5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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