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덕 교무
이윤덕 교무

[원불교신문=이윤덕 교무] 필자는 독일에서 스무여 해를 살면서도 사용하는 말에 주어동사 위치를 정확하게 붙이지 않아서 핀잔을 자주 듣는다. 말버릇도 쉬 변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익숙함을 편리함으로 착각하며 그것을 옳다고 집착함으로 독일생활 언어를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개념이 너무도 명백한 유럽인들의 언어 구조는 때때로 나를  몹시 당황하게 한다. 우주 삼라만상은 고요하면서도 늘 꿈틀거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가운데 하늘이 열리고 땅의 갈라짐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어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길들여진 이들은 눈앞에 당도해 느껴질 때서야 알아차리며 창황전도 하게 된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대책을 준비하지 못한 채 만난 바이러스 때문에 당황하고 많은 인명을 잃고 산업이 마비되어 있다. 미래를 전망하는 많은 학자들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하나의 분기점으로 세계사적 변화라 말하고 있다. 

일찍이 인류가 만나지 못한 크나큰 변고의 사변이 준비하지 않은 상태로 또는 온전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지금 보다 더 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한 세기 이상의 고통을 안겨준 사변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의 일들은 때때로 누군가의 이익집단에 의해 또 정치적  술수에 의해 부풀려 확대되거나 없었던 일로 숨겨진 일들이 부지기수 였다. 코로나19에서 알 수 있듯이 일이 벌어진 이후에 그 일에 준비하지 않고 준비해야할 때에 허송세월로 보낸 통치자일수록 인류와 백성들을 더 가혹하게 만들거나 방치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읽으시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신 원각성존 소태산 부처는 공부인들에게 일에 대처하는 표준으로 “일이 없을 때에는 항상 일 있을 때에 할 것을 준비하고 일이 있을 때에는 항상 일 없을 때의 심경을 가질지니, 만일 일 없을 때에 일 있을 때의 준비가 없으면 일을 당하여 창황전도(蒼惶顚倒)함을 면하지 못 할 것이요, 일 있을 때에 일 없을 때의 심경을 가지지 못한다면 마침내 판국에 얽매인 사람이 되고 마나니라”라고 일갈했다.

도도히 흘러온 인류역사가 처음에는 누가누구를 지배하는 구조였겠는가? 잉여생산물이 생기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구조화 되고 견고해지면서 또 다시 그 지배로부터 자유하려는 몸부림의 역사를 새겨왔다. 신과 사람의 관계든, 사람과 사람의 관계든 평등하지 못하면 더불어 함께 행복을 만들어 가지 못하면 못할수록 세상의 주인인 사람의 고통은 커지는 것이며 광대무량한 낙원은 요원해 져서 죽어서나 맛볼 수 있는 천국이나 극락으로 되고 말 것이다. 

정산종사는 일제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한 대한독립 만세소리를 원각성존은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라 했다고 전했다. 개벽은 시대정신이며 동시대 주인공들이면서 착취당하는 민중의 절규의 외침은 아니었을까? 지금 이시기 인류가 코로나19 앞에서 당차게 이겨내려는 치연작용 함이 어찌 개벽을 열어가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개벽은 다시 한 번 탐구해 보면 원래 있는 본래 자리와 하나 됨이 아닐런지. 선천시대엔 한 부처나 한 지도자의 몫이 컸다 해도 정법을 가진 부처는 모두가 부처라 했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후천개벽의 시대는 모두가 부처이니 부처의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고. 본시 권력은 국민의 것이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제 만백성이 있는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 자리를 확인하고 원래주인에게 돌려놓는 마음공부가 곧 원불교의 개벽사상 아닌가 말이다.

/레겐스부르크교당

[2020년 5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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