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은 교무
임진은 교무

[원불교신문=임진은 교무] 명상가이자 심리치료사인 존 웰우드(John Welwood)는 수행하는 사람들이 자칫 수행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를 ‘영적 우회’라고 했다. 즉, 영적 우회란 인간의 욕구나 감정,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인생의 과제, 살면서 맺힌 불편한 마음 등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거나 이를 조급하게 초월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수행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매일매일의 치열한 마음작용을 통한 실다운 수행이 아닌, 그럴듯한 가면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삼대력이 쌓일 리 없다.

영적 우회와 관련해, 언젠가 한 교도님이 안타까워하며 들려준 지인의 이야기가 있다. 오랫동안 각종 수련에 참여하면서 마음의 자유를 추구했던 어떤 분이 한 수련단체에서 만난 인연과 기쁘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됐는데, 막상 함께하는 생활이 시작되니 하루하루를 지옥 속에 사는 것 같다며 괴로워한다는 내용이었다. 내막은 다 알 수 없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의 근본을 궁구하고 수행의 힘을 발휘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영적 우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수행의 길을 잘 찾아야 한다. 그 길에 도움이 될 존 웰우드의 제안이 있다. 

그는 인간 조건의 세 가지 차원인 하늘과 땅, 인간에 담긴 원리를 수행에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는 하늘의 원리로,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라는 데 집착하면서 한정된 틀 속에 자신을 묶어놓는다. 그러나 마치 우리의 머리 위로 광활하게 열린 하늘이 있는 것처럼, 나를 비롯한 모든 형상과 분별 너머에는 진정한 본성이 있다. 만약 나라고 집착하는 고집스러움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내 삶은 좁은 한계를 넘어 그 무한한 공간 속에서 펼쳐지게 될 것이다. 

둘째, 땅의 원리는 자신의 몸을 잘 살피고 심리적인 패턴을 다루는 것이다. 현실의 삶을 인정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거부, 중요한 누군가를 잃었던 경험 등은 설사 지금은 잊은 것 같아도 깊은 무의식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는 현재의 감정이나 생각, 대인관계 등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면서 온전히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내가 지나온 삶의 걸음걸음이 어떠했으며, 현재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아는 것, 그리고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더 본질적인 자유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스승님이나 도반, 또는 전문가와의 세밀한 심리적 작업이 도움이 된다. 

셋째, 인간의 원리는 가슴을 일깨우는 것이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이 자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내 성격이라는 갑옷을 벗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한 채 나의 삶에 무엇이 다가오든지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유쾌한 것은 환영하고 불쾌한 것은 거부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집착하고 싫어하는 것은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때로 지독한 고통이라 할지라도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경험을 온 마음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세 가지 차원의 원리 중 어느 하나라도 존중하지 않는다면 삶은 왜곡되고 균형을 잃게 된다. 현실을 모른 채 하늘만을 바라보는 것도, 현실에만 매몰되는 것도, 성격이라는 단단한 틀 속에 갇히는 것도, 결코 우리가 원하는 인생은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6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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