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정전에 ‘우라 함은 대소 유무와 시비 이해를 전연 알지 못하고 자행자지함을 이름이니라’고 했다. 즉 무명의 번뇌로 인하여 자성의 지혜 광명이 덮이고 가리어서 일의 시비이해와 이치의 대소유무를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면 자연 자행자지를 행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벌어지나니 이것이 바로 우(愚)의 의미이다.

글을 지으니 “무릇 어리석음이라는 것은 안으로 혼미하고 밖으로 미혹됨을 이름이라. 이에 안으로 혼미하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부처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한 밖으로 미혹하다는 것은 일원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수도하는 사람이 미혹의 장막을 걷지 못하면 부처와 진리의 경계가 드러나기 어려우리니 삼학을 수행함으로써 능히 본래의 지혜를 밝히고 또한 공리를 궁구함으로써 능히 둥근 진리를 깨쳐서 이에 복혜가 구족한 부처조사를 이루자는 것이라.”(한문생략)

우리는 우(愚)의 깊은 뜻을 알아야 한다. 사람 이름에도 쓰이고 호(號)에도 쓰이며 자신을 낮춰 말할 때도 쓰인다. 이럴 경우에는 단지 ‘어리석다. 어둡다. 고지식하다. 우직하다’라기 보다는 ‘겸손하다. 현명하다. 능숙(能熟)하다. 질박하다(質樸)’는 등의 뜻을 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명호(名號)에 쓰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곰삭은 술처럼 최고의 풍미를 쌓고 있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숙군자(熟君子)·숙현자(熟賢者) 등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우를 어떻게 보았을까? ① 설문에 “우는 어리석은 것이라(愚 戇也)” ② 시·대아·억(詩·大雅·抑)에 “주밀한 위의는 오직 덕의 모서리니라. 사람들이 또한 말하되 밝다는 사람치고 어리석지 않은 이가 없다 하니라. 서인들의 어리석음은 또한 오직 병폐 때문이거니와, 철인의 어리석음은 또한 오직 이 어긋남이로다” ③ 순자·수신(荀子·脩身)에 “옳은 것을 옳고 그른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을 지(앎)라고 이르고, 옳은 것을 그르다하고 그른것을 옳다고 하는 것을 우(어리석음. 명청함)라 이르니라” ④ 가자도술(賈子道術)에 “깊이 재앙과 복을 아는 것을 지라 이르고, 반대로 아는 것은 우가 되니라” ⑤ 당·한유 사설(師說)에 “성인이 성인 된 까닭과 우인이 우인된 까닭은 그 모두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저” ⑥ 제갈량 출사표(出師表)에 “우둔한 제가 알기로 영중의 일은 일이 크든 작든 모두 그에게 자문하시라” ⑦ 삼국연의(三國演義)에 “어리석은 소견이나마 한 말씀 드릴 테니 승상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송(頌)하기를
우자부지불(愚者不知佛) 어리석은 자 부처를 알지 못하고
치인매이원(癡人昧理源) 어리석은 사람 진리 근원 어둡네
심중지복만(心中知福滿) 마음 가운데 지혜 복락 가득하니
해각성원촌(解覺聖園村) 알고 깨달으면 성현 동산 마을이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0년 6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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