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겸양(謙讓)은 겸손하고 사양하는 마음인데 일은 항상 남보다 앞서고 공은 저 사람에게 미루는 것을 말한다. 처세(處世)의 명감(明鑑)은 굴기하심(屈己下心)으로 스스로 하심을 주장함을 말한다. 이 겸양에는 내겸(內謙)과 외양(外讓)으로 구분된다. 내겸이란 안으로 공경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부귀 등에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심을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서 외양이란 밖으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공(功)이나 명예나 의식(衣食)까지라도 남의 의견을 존중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상등인일수록 몸을 낮추고 사양할 줄 안다. 겸양은 평화의 근본이 되고 교만은 다툼의 시작이 된다.’ 교만에 빠졌을 때 마음을 정(靜)하게 하는 대산종사 말씀이다.

쌍둥이 조카 평화와 보은이, 잠시 소환한다. 삼복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할머니는 정성스레 준비한 점심식탁으로 어린 보은이를 부른다. 더운 여름, 영계백숙을 준비한 할머니에게 보은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에! 이 어린 것을…’이라고 말하며 식탁을 벗어나 먹기를 거부했다. 서너 살 무렵의 보은이 눈에 뚝배기에 퐁당 빠진 어린 닭은 가엾기 그지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윌리엄은 식탁 위에 놓인 통닭을 아빠 몰래 쇼파로 데려가 천으로 덮어주고 에어컨도 꺼 버린다. 벌거벗겨진 통닭이 너무 추울 것 같아서다. 

아이들은 생명과 무생명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든다. 세상 일체 만물에 몸과 마음이 활짝 열려있음이다. 조금 더 자라 학교에 가면 이런 능력이 사라진다. 교감이 아닌 분별, 공감이 아닌 대립이 더 우세해지는 까닭이다. 분별과 대립이 우세해지는 순간 말캉말캉했던 아이의 몸과 마음이 뻣뻣해진다. 가질수록 헛헛하고, 누릴수록 막막하다는 현대인에게 동서양의 현자들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라고 한다. 처음처럼 신선한 태도로 만물과 만나 교감하고 갓난아기가 처음 세상과 만나는 마음, 겸양의 마음을 회복하라고. 

‘하나를 끌어안을 수 있는가, 또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점을 쳐보지 않아도 길흉을 알 수 있는가, 멈출 줄 아는가, 그만둘 줄 아는가, 다른 사람은 놔두고 자기에게서 찾을 줄 아는가, 홀가분하게 떠날 줄 아는가, 멍한 모습으로 찾아올 줄 아는가,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줄 아는가.’ 장자가 말한 생명을 보위하는 법칙이다. 자신 있게 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되는지. 길흉을 알아 멈춰야 할 때를 알고, 소유와 증식과 팽창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른 사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물결치는 대로 함께 흘러가야 한다.  

최재천 교수는 지금 우리에겐 의학 백신보다 생태 백신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교만의 마음 내려놓고 몸을 낮추고 사양할 줄 아는 지혜가 곧 백신이다. 기억하자. 아는 것은 실행할 때가 제일 귀하고, 몸은 겸양할 때가 제일 귀하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6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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