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은 교무
임진은 교무

[원불교신문=임진은 교무] 상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는 일반적인 대인관계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상담자는 따뜻함과 민감성을 가지고, 내담자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어떤 이야기를 하든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끝까지 존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변화를 돕는다. 더욱이 비밀보장은 상담자의 기본 윤리이니, 여러 면에서 상담장면은 내담자가 평소의 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된다. 이 속에서, 내담자는 용기를 가지고 그동안 억압해온 고통스러운 마음을 꺼내 치유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행동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새로운 행동을 실험해볼 수 있다. 
 
상담관계 속에서 많은 내담자들이 겪게 되는 또 하나의 관계 경험이 있는데, 바로 ‘전이’이다. 전이란 내담자가 상담에서 가지게 되는 일종의 왜곡으로, 과거에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와 같은 중요한 사람에게 느꼈던 감정을 현재의 상담자에게 느끼는 것을 말한다. 전이는 과거에 충족되지 못한 애정과 의존 욕구,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내담자의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있는 욕구나 감정, 갈등으로 인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한 분노와 원망이 쌓여있는 내담자는 상담자를 실제보다 훨씬 엄격하고 권위적인 사람으로 보면서 사소한 말에도 화를 낼 수 있다. 
 
내담자에 따라서 상담자를 더 긍정적으로 보는 긍정적 전이나 부정적으로 보는 부정적 전이가 나타날 수 있는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전이는 내담자가 오랫동안 심리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신호가 된다. 그러므로 내담자가 보이는 전이 현상을 상담자와 함께 탐색하고 이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욕구나 감정,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돕는 것이 상담의 중요한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왜곡된 지각이 상담장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인간관계 속에서도 사람들을 향해서 이러한 ‘관계 왜곡’이 무수히 일어난다. 각자의 해결되지 못한 욕구나 감정은 무의식에 남아서 반드시 현실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감정이나 갈등조차 무의식 속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고 틈날 때마다 영향력을 발휘한다. 마치 마음속에 씨앗이 있으면, 조건이 맞을 때마다 발아해서 잎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가진 청년이 직장에서 매번 여성 상사와 갈등을 빚는다든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인정과 지원을 받지 못한 것에 서운함이 큰 여대생이 친구들에게 과도한 경쟁심을 보이는 경우 등이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청년이 자신도 모르게 여성 상사를 어머니처럼, 여대생이 친구들을 형제들처럼 느끼는 것과 같은 이러한 관계 왜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관계 왜곡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기대와 감정으로 채색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만큼 담백하고 진솔하게 현실을 볼 수 없고, 내면의 평화가 깨지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 쉽다. 만약 자신이 누군가를 향해 자꾸 과한 기대를 하게 되거나 정도 이상의 강한 감정을 느낀다면, 멈추고 생각해보자. 저 깊은 곳에 묶여 있는 ‘나’의 마음을 만나고, 치유하고, 자유롭게 해줄 기회일 수 있다.

 /원광대학교

[2020년 6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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